[쿠키 사회] 죽음은 삶의 일부가 맞다. 죽음은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삶은 죽음을 못 본 척 하고, 우리 사회는 죽음을 얘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죽음은 밤과 같다. 하루가 낮과 밤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애는 삶과 죽음으로 완성된다. 오진탁(51)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10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1997년 교양과목으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고, 2004년 국내 유일의 죽음문제 연구소라고 할 생사학연구소를 열었다. 지난 달 29일 ‘죽음을 가르치는 교수’를 만나러 춘천으로 향했다.
-매일 누군가 죽어갑니다만 올 들어 몇몇 죽음들이 국민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존엄사 논쟁 한 가운데 서 있는 김 할머니가 그렇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도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먼저 김 할머니 얘기부터 해보죠.
“할머니께서 우리 사회에 큰 이슈를 던지셨다고 봅니다. 연명치료 중단 논의를 계기로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일어나야 해요. 그런데 존엄사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는지 몰라도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호흡기를 떼느냐 마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전문가들도 육체적, 의학적, 법률적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문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죽음문화, 죽음의 질, 죽음준비 교육, 임종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합니다. 여전히 심폐사, 뇌사 등 육체 중심으로만 죽음을 얘기하는 수준 아닌가요? 죽음에 대한 논의가 의사나 변호사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예요. 인간이 과연 육체만의 존재입니까?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나는 것입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철학적, 종교적, 영적 죽음이 완전히 빠져 있어요.”
-존엄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입니까?
“치료가능성이 1%도 없을 때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세계적인 추세죠.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를 허용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봅니다. 존엄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 하는 점이 문제입니다. 의과대학에서조차 죽음을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당사자와 가족들도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습니다. 죽음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존엄사를 법제화한다면 ‘현대판 고려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대만에서는 7년의 사회적 논의를 거쳐 존엄사를 합법화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30여년 전부터 활발하게 논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초유의…
“정치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 교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질문 앞에서 꽤나 곤혹스러워 했다. 어떤 얘기든 정파적으로 독해되고마는 요즘의 풍토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사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라면 그에게 적합한 질문은 못 된다. 다만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라면 자살예방교육에 전념해온 전문가로서 할 말이 있을 듯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 죽음문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죽음 인식과 죽음 방식이 그대로 드러났어요. 살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만연해 있는 거죠. 대통령마저도 그렇게 해서 자살을 선택한 거 아닙니까. 최진실씨도 마찬가지고. 우리 사회의 자살 문제는 갈 데까지 갔어요.”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자살대국’이라는 일본보다 더 높습니다. 자살문제의 해법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자살률이 높다는 건 빙산의 일각입니다. 청소년 자살충동률이 50%가 넘고, 시민들의 우울증 유병율은 50% 이상입니다. 자살률 증가 자체도 문제지만 자살충돌자, 자살예비군이 양산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거죠. 해법은 죽음준비교육에 있습니다. 자살의 원인을 따져보면 크게 세 가지예요. 첫째 개인적 동기, 둘째 경제난 등 사회적 문제, 셋째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 개인적 동기나 사회적 문제로 인한 자살이야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쳐도, 세 번째 원인으로 인한 자살은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요. 자살을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고 그걸로 다 끝난다고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자살을 하면 오히려 더 큰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는 걸 알아야 해요. 결국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이죠. 학교와 사회기관에서 죽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 중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같은 생사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사불이(生死不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 이것은 생사학의 기본입장입니다. 죽는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평화로운 죽음을 원한다면 제대로 살아야 한다, 뭐 이런 뜻이죠.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자살을 정당화하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어요. 삶을 정당화하는 경구로 썼으면 좋았을텐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뜨거웠다면,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렇죠. 김 추기경은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했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품위있는 죽음의 선례로 꼽힐 만 합니다. 사실 저명인사들이 품위있게 죽음을 맞는 사례가 필요해요. 사전의료지시서(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해 의료진에게 자기가 원하는 치료와 원하지 않는 치료를 미리 밝혀두는 서류)나 유서를 미리 써놓고, 인공호흡기 안 달고 편안하게 죽는 사례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었잖아요. 추기경께서는 서류로는 안 썼지만 말씀으로 미리 다 얘기해 놓으셨죠.”
-우리 사회 죽음의 질이 낮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 겁니까?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이 뭔지도 모른 채 죽어가고,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그러니까 불행하게 임종하게 되는 거죠. 마지막 순간에 다들 ‘죽기 싫다’고 하잖아요. ‘안 돼!’ 하면서 눈도 못 감은 채 죽고. 남아있는 가족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그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 슬픔조차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다면 성숙한 죽음, 품위있는 죽음은 어떤 겁니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장이고 삶의 완성이라는 걸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없어요. 죽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죽음준비를 충분히 하고, 편안하게 죽는 것, 이게 바로 ‘웰다잉(well-dying)’이죠.”
‘웰다잉’은 오 교수가 2006년 만들어낸 말이다. 영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오 교수는 일반인 대상 죽음준비 교육을 시작하면서 이 말을 고안했다고 한다. ‘죽음준비교육’이라고 내걸면 아무도 안 올까 싶어서.
-잘 살기도 힘든데 왜 잘 죽는 문제까지 고민해야 합니까?
“죽음은 삶의 마무리, 생의 결론입니다. 어떤 일이나 어떤 이야기나 마무리가 중요하지 않은 게 있나요? 아무리 잘 살았다고 하더라도 세속적인 성공은 다 두고 가는 겁니다. 잘 죽지 못한 인생은 결코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죠.” 춘천=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종교와 철학에 심취했다고 한다. 장자(莊子)철학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5년 한림대에 부임했다. 97년부터 대학생 대상으로 '죽음의 철학적 접근' '인간의 삶과 죽음' '자살예방교육' 등을 강의하고 있다. 국내 생사학 분야의 개척자로 꼽히며, 죽음준비교육과 자살예방 전문가 양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 '마지막 선물' 등의 책을 썼다. 현재 한림대 생사학연구소(www.lifedeath.or.kr) 소장.
▶뭔데 그래◀ 예비군 동원훈련 연장 적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