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성역’ 되고, 팬들은 ‘이성’ 잃고

김연아는 ‘성역’ 되고, 팬들은 ‘이성’ 잃고

기사승인 2009-07-10 16:39:01

[쿠키 스포츠] ‘피겨여왕’ 김연아(19·고려대)를 둘러싸고 인터넷이 시끄럽다.

파문은 내달 14일부터 3일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제1체육관에서 열리는 아이스쇼인 ‘삼성 애니콜하우젠 아이스 올스타즈 2009’ 때문이다. 김연아는 겨울 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그동안 훈련했던 모습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이자 공연을 주최하는 IB스포츠는 8일 “이번 쇼에 미셸 콴과 아담 리폰(이상 미국), 스테판 랑비엘(스위스) 등이 출연하고, 여성 그룹 다비치가 김연아의 갈라 프로그램에 맞춰 직접 노래를 부른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팬들이 김연아에 대한 높은 대우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이번에 섭외된 애덤 리폰이 김연아와 함께 아이스쇼에 설 수준이 안 되고, 다비치도 김연아와 격이 맞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팬들은 애덤 리폰의 홈페이지를 찾아 ‘정상급 선수도 아니면서 왜 출연하나’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아이스쇼에 김연아의 비중이 너무 작다는 반응도 쏟아졌다.

이를 보다 못한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는 8일 오후 인터넷에 “이번 쇼 이후로 다시는 연아가 아이스쇼에 서지 않을 것을 약속 드린다”는 글을 남겼다. IB스포츠는 “박미희씨가 인터넷에 글을 올릴 정도로 상황을 힘들게 만든 것에 대해 아이스쇼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번 파문은 김연아 신드롬의 역효과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동안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각종 세계선수권대회를 연이어 제패하며 국민 스포츠 스타가 됐다. 이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무명 피겨 선수가 요정이 되고, 여왕이 되면서 김연아 신드롬은 절정에 달했다. 온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공고히 갖춰져 CF계 최고의 블루칩이 됐다. 김연아의 광고 출연을 원하는 기업이 줄을 섰고, 김연아도 상업성을 한껏 끌어올렸다. 다른 종목에 비해 피겨 선수는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국민 스포츠스타 이미지가 애국심을 발동시키고, 귀엽고 예쁜 외모가 여성성을 강조하는 동안 김연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역’이 됐다. 김연아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다시피 했고, 팬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국내 피겨 인프라 구축이라는 지상과제는 도외시되고, 김연아의 상업적인 행보를 우려하는 의견은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번 파문은 일부 김연아 팬들이 보다 그녀를 돋보이게 만들고자 하는 현상이 빚어낸 촌극이다. 팬들은 이왕이면 일류 선수와 호흡을 맞추고, 탁월한 음악성을 가진 뮤지션이 그녀의 몸짓에 노래를 불러주길 원했다. 하지만 과도한 애정은 집착이 되고, 이성적인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과도한 집착은 아이돌 가수 팬들과 매우 유사하다. 아이돌 가수 팬들은 자신들의 우상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스캔들에 민감하고,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한다. 라이벌 가수를 헐뜯는 것도 예사다. 공적인 자리에서 높은 대우를 요구하기도 한다. 피겨 팬들이 아니라 김연아 팬들이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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