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한국외대 전태현 교수(말레이·인도네세아통번역학과)의 소개로 3년 전 찌아찌아족을 만나게 됐다. 전 교수는 국제학술대회차 바우바우시를 방문했다가 한류 덕분에 한국 마니아가 된 현지 시장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고 이 교수에게 한글 보급을 적극 권했다.
시장은 이 교수가 추진하는 한글 보급 사업을 앞장서서 지원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견제가 가장 우려됐고 그 다음으로는 해당 민족의 교육열과 한글에 대한 관심이 문제가 됐다”면서 “지방정부와 협력협약(MOU)을 맺고 공식적으로 진행해야만 한글 보급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들에게 한글을 전파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 교수는 예전에 알타이 프로젝트 학술진흥재단 지원으로 중국 흑룡강 유역의 소수민족인 오로첸족(族)에게 한글을 전파하려 했지만 동북공정 등으로 인한 중국 정부의 곱지 않은 눈길 때문에 도중하차한 적이 있다. 또 태국 치앙마이 라오족언어를 조사했던 이 교수의 은사 이현복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도 비공식적으로 한글교육을 했고, 미국 뉴욕주립대 음성과학과 김석연 교수 역시 네팔 오지에 한글 보급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이 교수는 “비공식적이거가 개인적으로 가면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체계적인 교과서가 없었던 것도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초기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학교에서 교육을 하려면 일관되고 표준화된 체계를 만들어야 했다. 한국에서 전문인력의 지원을 받아야 했고, 찌아찌아어를 분석하기 위해 원어민의 도움도 얻어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향수병과 도시 스테레스, 추위, 불면증 등에 시달렸고 몇 번이나 귀국을 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현지인 초등학교 교사 아비딘씨는 찌아찌아어 교과서 편찬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이 교수는 아비딘씨와 함께 내년 여름까지 찌아찌아어 교과서 2권을 쓸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장된 국력과 한류의 인기 덕분에 한글 보급 사업이 예전보다 쉽게 진행될 수 있었다. 현지에서 한국의 인기와 한글·한국어 교육에 대한 열의가 의외로 높았으며, 한글을 통해 한국과의 교류가 활성화할 것이란 희망을 찌아찌아족들이 가지고 있어서 초기 접근이 쉬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제 행정적 절차가 마련됐으니 그들의 일상생활에 한글이 얼마나 녹아들 수 있을지 관심을 두고 지원해가야 한다”며 “여력이 생기면 다른 민족, 더 나아가 한 나라의 국어를 한글로 채택하는 경우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사업은 개인 재단의 재정 지원으로는 사업확장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된다면 더욱 쉽게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고
같은 문자를 쓰는 형제민족 형제국가가 생겨나 민족 자긍심과 국가브랜드 강화라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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