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서거한 18일 저녁 이희호 여사등 유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헌화한 인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이었다. 불과 8일 전 병원을 찾아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정치적 라이벌을 떠나보낸 YS의 표정은 침통했다. DJ와 화해를 선언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YS의 발언과 표정은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DJ가 투병했던 마지막 일주일을 지난 세월의 갈등을 정리하는 화해와 포용의 자리로 만든 계기는 YS의 문병이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신군부 시절 DJ를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했던 당사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최대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녀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이 문병 행렬에 동참했다.
양김의 화해를 지켜본 정치권 인사들은 “좀더 두 사람이 일찍 화해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해본다. 또 여전히 이들의 화해가 미완이라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는다. 양김의 갈등에서 비롯된 정치권의 대립이 여전히 정치발전과 국민통합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만큼 인간적인 화해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는 19일 라디오방송에 출연, “두 분이 인간적인 면에서의 화해를 했고, 이제 정치적인 화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화해는 좁게는 동교동과 상도동으로 대표되는 두 정파의 화해, 넓게는 양김과 두 계파의 갈등으로 고착된 지역구도를 깨는 것을 말한다. 김 특보는 “두 분간 경쟁에서 생긴 부산물인 지역주의가 아직 남아있는 만큼 두 분을 모시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후배들이 이 병을 고치는 일에 민주화운동의 초심으로 함께 손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치권에서도 만사지탄이지만 DJ 서거와 양김의 화해가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된 만큼 제도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양김이 남긴 정치적 유산을 깨지 않는다면 진정한 화해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양김의 불화가 제도로 나타난 것이 소선거구제로 대표되는 현행 선거제도이며 이 제도로 영남당, 호남당 구도가 고착됐다”며 “정치 후배들이 잘못된 우상, 즉 지역주의라는 기득권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현행 제도를 고집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양김은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해 85년 총선에서 큰 바람을 일으켰었다”며 “민추협 활동을 재조명하는 역사적 작업이 지역구도를 푸는 정치적 화해의 겸허한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강조한 지역주의 타파도 정치권의 화해와 타협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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