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시리즈―부동산] 다시 살아난 대박의 환상

[금융위기 시리즈―부동산] 다시 살아난 대박의 환상

기사승인 2009-09-11 17:22:01

[쿠키 경제] 맞벌이 회사원 이모씨(38) 부부에게는 무용담(?)이 하나 있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 개포동 아파트값이 일주일 만에 수천만원씩 뚝뚝 떨어지는 걸 지켜보다가 3억원에 가까운 돈을 제1·2금융권에서 대출받아 서울 개포동 주공 1단지 36㎡를 5억2000여만원에 구입했다. 매월 150만원이 넘는 대출이자를 갚느라 헉헉대고 있지만 이씨는 “남는 장사를 했는 데 이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씨 집의 시세는 11일 현재 7억2000만원. 1년도 안 돼 몇년치 연봉을 한꺼번에 벌어들였으니 ‘대박’을 터뜨린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대한민국을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대박’의 추억과 환상이 가득하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집값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날개를 달았다. ‘강남 불패 신화’도 다시 도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한 수도권 투기지역 해제, 양도세 중과 한시폐지 등 규제완화 조치들이 집값 상승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집값은 이달 들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수도권까지 확대해 돈줄을 틀어막고서야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응급 처방일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009년은 2006년의 판박이(?)=지금의 집값 폭등현상은 2006년 말 전국 집값이 최고점을 찍었던 당시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통계 지표와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만 보자. 2006년에 217조1163억원이었는데, 올 들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벌써 254조원이 넘게 풀렸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 개포동 주공 1단지 43㎡의 시세는 11일 현재 8억3000만원선. 2006년 최고점(7억65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강남 3구는 전 고점 대비 90∼95%까지 회복된 상태다.

김선덕 건설사업전략연구소장은 “저금리 기조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강남 재건축 시장을 달궜다는 점에서는 올해와 2006년도 하반기의 집값 상승 현상이 비슷하다”면서 “다만 당시에는 세금폭탄으로 집값이 폭등했다면 올해의 경우 재건축 규제완화 등 부동산 규제가 대폭 풀리면서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전세대란에 대한 우려도 2006년 하반기의 ‘아픈’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서울 지역 전세값은 3.3㎡당 평균 62만원(12.4%)이나 올라 무주택 서민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인천에 사는 박모(35·회사원)씨 부부는 12월이 계약만료 시점이지만, 집주인의 성화에 못이겨 3개월 앞서 전셋집을 빼기로 하고 지난달 말 구월동의 한 아파트를 전세로 계약한 뒤 풀이 죽어있다. 2년 전 시세보다 무려 5000만원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부동산 불패신화 뿌리뽑아야=현재의 집값 상승은 ‘강부자(강남 부자)’ 내각이란 비아냥까지 들었던 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해 규제 빗장을 대거 풀어헤쳤기 때문. 재건축 규제 완화에 따른 추가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감이 이른바 ‘대박의 환상’을 부추겼다. 특히 규제 완화로 재개발·재건축 대상이 많아지고 동시에 주택 멸실수와 함께 이주 수요가 증가해 전세가격 상승까지 불러왔다는 것이다. 정부는 투기지역 추가 지정이나 금리인상 등 추가적인 집값 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8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이 ‘투기’가 아닌 생산적인 투자·소비로 흘러가도록 물꼬를 돌려놓는 일도 시급하다.

조명래 단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상승과 전세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부동산 규제를 재강화하는 방안을 깊이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지금의 전세난은 뉴타운 같은 도심재개발 사업이 한꺼번에 몰려 있어서 ‘동시 멸실, 동시 입주’ 패턴에 따른 영향이 크다”면서 “도심 재개발의 속도 조절과 순차적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조기에 투기지역을 지정해 투기수요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박재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