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는 정말 재범을 버렸나
‘토사구팽(兎死狗烹)’. 그룹 2PM의 팬덤이 재범(23·본명 박재범)의 영구탈퇴에 분노하는 원초적인 이유다. 팬덤은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와 나머지 여섯 멤버가 재범을 버렸다고 말한다. 7명의 멤버에서 한 명이 사라졌을 뿐인데 순식간에 2PM은 ‘6PM’이 됐고 짐승돌에서 ‘배신돌’로 추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가요계 정상에 오른 2PM의 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재범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재범은 그룹 초창기 지상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2PM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 리더이자, 지난해 9월 한국 비하 파문으로 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대중에 2PM을 깊이 각인시켰다. 재범 본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아픈 비극이 2PM에게는 희극으로 작용했다.
JYP는 정말 재범을 버렸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측 가능한 정황이 있다. 지난해 연말 지상파 3사를 비롯해 각종 가요 시상식 주최 측에서는 2PM이 수상할 시 재범이 함께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JYP에 제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범이 2PM으로 컴백한다는 사실이 확실시 될 정도로 JYP가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JYP는 이를 거절했다. 어느 한 시상식에만 재범이 등장해 다른 시상식과 불편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광고회사 한 관계자는 “이미 업계에서는 재범의 2PM 복귀가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며 “재범의 출연을 부가조항으로 삽입하다는 광고회사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는지가 문제였을 뿐, 재범의 컴백은 당연하다고 믿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내 급변한다. JYP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2일 재범은 자신의 실수를 고백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올해 1월3일 2PM 나머지 여섯 멤버들에게 전달되고 1월6일 재범의 영구탈퇴가 확정된다. 2PM 팬덤은 묻는다. 어떻게 재범을 보호해야 할 소속사가 보름 만에, 재범과 동고동락한 멤버들이 불과 3일 만에 재범의 영구탈퇴를 동의할 수 있는지. 재범을 사랑하는 팬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JYP는 팬덤의 예상된 질문에 미리 답변을 내놨다. JYP는 지난달 25일 재범의 영구탈퇴를 알리며 “본인의 사생활 문제이므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문제의 내용은 작년 9월 팀 탈퇴 시의 문제(한국 비하 파문)보다도 훨씬 더 안 좋고, 또 사회적으로도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JYP의 다른 설명은 모조리 사라지고 ‘심각한 사생활 문제’라는 모호한 표현만 남았다는 점이다.
JYP는 그동안 재범의 복귀를 위해 소속사와 나머지 멤버들이 한 노력을 소개한 바 있다. JYP는 “2PM이 진행하고 있는 모든 광고, 공연, 행사 등의 계약 대상을 6명으로 제한하지 않고 재범 컴백 시 7명으로 조정될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하여 그의 컴백에 대비하고 있었다”며 “작년 11월 경 재범에게 올해 4월 발매될 앨범으로 복귀를 제안했고 재범이 이에 동의함에 따라 구정 직후인 2월 셋째주 귀국 및 기자회견, 3월 7인조 활동 시작이라는 계획을 확정지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재범이 심각한 사생활 문제로 인해 2PM을 영구탈퇴 한다는 사실만이 남을 뿐, JYP가 재범을 위해 준비한 계획은 모두 묻히고 말았다. 대중은 심각한 사생활 문제가 무엇인지 촉각이 곤두세웠고, 2PM 팬덤은 실체도 알 수 없는 주홍글씨를 재범에게 새겼다고 흥분했다. 그렇다면 JYP는 왜 재범의 2PM 영구탈퇴 사유를 심각한 사생활 문제라고 굳이 표현했을까.
국내 유명 연예기획사 한 관계자는 “JYP를 보고 솔직히 조금 놀란 것이 사실이다”며 “보통 아이돌 그룹 멤버의 교체 혹은 탈퇴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개인 일신상의 이유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령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JYP가 굳이 심각한 사생활 문제라고 언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재범을 2PM 영구탈퇴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JYP는 반드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을 비록 추상적이기는 해도 심각한 사생활 문제라고 뚜렷하게 명시했다. 왜 그랬을까. JYP 정욱 대표는 팬덤과 가진 간담회에서 “솔직하게 말을 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2PM 팬덤이) 의문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밝힌 것”이라며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작성한 공지에 거짓을 작성할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또한, “(재범의 심각한 사생활 문제로 인한) 사건이 발생한 후에 6명의 멤버들이 배신자가 되지 않기를 원했다. (재범) 한 명보다 나머지 6명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간담회에서 정 대표와 나머지 멤버들은 재범이 상상할 수도 없는 심각한 실수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재범을 지켜주기 위해 절대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지만 이를 알고 있는 다른 외부인도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유출이 단순한 정보인지, 물품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JYP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아마도 JYP는 재범의 영구탈퇴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 2PM 팬덤이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라 내다보고 심각한 사생활 문제로 언급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대중에게) 상상의 여지를 너무 많이 제공했고 결정적으로 재범을 기다리고 있는 2PM 팬덤을 과소평가한 점이 실책”이라고 말했다.
실제 2PM 팬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매불망 기다린 재범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비극적 상황에서 JYP가 내세운 심각한 사생활 문제라는 변수는 희석됐다. 재범이 왜 2PM을 떠나야 했는지에 대한 이성적 판단에 앞서 JYP가 재범을 버렸다는 감정적 판단이 뇌리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소위 토사구팽론의 시작이자, 끝이다.
음모론
‘복마전(伏魔殿)’. 재범의 2PM 영구탈퇴와 맞물린 또 다른 키워드다. 2PM 팬덤은 JYP가 꾸민 어떤 음모로 인해 재범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 JYP와 나머지 멤버들이 실제로는 재범의 복귀를 원하지 않았다는 가설이 핵심이다. 하지만 주장만 있고 실체가 없다.
음모론은 목적성으로 완성된다. 만약 JYP가 재범을 고의적으로 2PM에서 영구탈퇴 시켰다면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2PM은 아이돌 그룹이기 이전에 상업 가수다. 유무형의 상업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 재범을 일부러 내쳐 JYP가 얻는 상업적 이익이 과연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지었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2PM이 출연하고 있는 광고는 밝은 느낌이 대부분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픈 기색이 있다. 멤버 한 명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재범이 돌아온다면 비로소 2PM이 복구된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재범의 2PM 복귀가 상업적으로 마이너스 효과가 될 가능성은 적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젊은 층에 어필하는 휴대폰과 패션 광고 등 상당수가 2PM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며 “재범이 복귀하면 러브콜이 더욱 쏟아질 것이라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재범 복귀로 인해 얻는 2PM의 상업적 가치를 수억여원으로 전망한 전문가도 있었다. 방송가도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지금도 2PM은 예능 프로그램 섭외 0순위”라며 “재범이 컴백했다면 지상파와 케이블 할 것 없이 섭외가 쏟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JYP는 실물 자산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로 인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재범의 2PM 복귀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상업적 가치는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JYP가 재범을 일부러 내쳤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약해지는 이유다.
실제 재범이 한국 비하 파문으로 인해 2PM을 일시탈퇴, 미국 시애틀로 돌아가자마자 가요계에는 재범 컴백 시나리오가 흘러 다녔다. 순식간에 재범이 코너로 몰렸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동정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재범이 컴백한다면 다시 7명이 된 2PM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였다. 동방신기가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빅뱅과 쌍벽을 이룬다고 보는 전망도 나왔다. 변수는 얼마나 드라마틱한 컴백을 할 수 있느냐 정도였지, 재범의 컴백은 2PM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는 히든 카드 중 하나였다.
2PM 나머지 여섯 멤버들의 부모가 재범의 복귀를 원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다. 실제 아이돌 그룹 부모들은 자식의 진로를 결정한다는 이유로 민감한 사안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식이 돋보이는 것을 원하면서도 그룹의 와해는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소속사와 일종의 줄다리기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고 상업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대다수다.
JYP에 따르면 재범은 2PM 영구탈퇴와 더불어 현재 전속계약이 해지됐다. 정산 관계도 모두 끝났다. 적어도 법적으로 JYP와 재범은 남남이다. 만약 JYP가 어떤 목적으로 인해 고의적으로 재범을 내쳤다면 본인 스스로든, 측근을 통해서든 얼마든지 내막을 밝힐 수 있다. JYP가 심각한 사생활 문제라고 밝힌 것에 대해 따질 수도 있고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재범은 물론, 부모와 측근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2PM 팬덤의 주장대로 재범의 영구탈퇴에 대한 모든 것이 JYP의 음모라면 재범의 침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음모론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2PM 어디로 가나
지금 2PM은 재범의 영구탈퇴로 극도로 혼란스럽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해야 할 시점에 직격탄을 맞아 이미지가 추락했다. 복구도 쉽지 않다. 우영과 택연 등이 개별 활동에 나서는 것도 부담스럽다. 광고 쪽은 아직까지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 대부분 팬들의 항의 전화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앞으로다. 파문이 장기화될 경우 광고주 입장에서도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JYP는 혼란스러운 2PM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어 놓았다. 재범의 영구탈퇴를 팬덤에게 직접 알리는 간담회를 연 것은 나름대로 참신한 시도였다. 앞으로 대형 기획사들은 아이돌 그룹의 해체시 JYP의 예를 들며 간담회를 개최하라는 팬덤의 요구를 받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JYP가 재범의 영구탈퇴를 알리는 방식이 논의가 아닌 일방적인 통보였다는 데 있다. 이미 소속사와 여섯 멤버들이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팬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멤버들이 재범의 영구탈퇴를 동의한다고 말하는 순간 팬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JYP의 시도가 실책이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JYP는 아이돌 그룹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면돌파를 한 전력이 있다. 그룹 지오디(god)의 박준형과 윤계상의 탈퇴 문제가 불거졌지만 다음 앨범의 상업적 성공으로 건재함을 과시했고, 원더걸스의 현아가 탈퇴했을 때는 ‘텔 미(Tell Me)'로 가볍게 재기했다. 프로듀서 박진영의 힘이다. 이번에도 음악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문제는 2PM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후라는 점이다. 하루아침에 동지에서 원수가 된 JYP와 2PM 팬덤, 아이돌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