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부부싸움 때문에 인질극 등 강력사건에나 출동하는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9일 오후 4시30분쯤 광주서부경찰서에는 경찰관들을 잔뜩 긴장시키는 한통의 신고전화가 접수됐다.
집기를 내던지고 서로 고함을 지르며 부부싸움을 하던 아파트 위층에서 갑자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신고자 김모(50)씨는 신문과 TV뉴스 등을 통해 격한 부부싸움이 살인 등 강력사건으로 번진 것을 자주 봐왔던 터였다.
112지령을 받은 지구대 경찰관들은 5분여 만에 현장으로 출동한 뒤 부부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신고를 받은 아파트 현관문을 수차례 두드렸다. 하지만 몇 차례의 시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출동한 경찰관의 거듭된 노크에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신고자와 경찰관들의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더 커졌다.
경찰관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형사계와 119구조대에 곧바로 지원요청을 했다. 이로 인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등의 숫자는 순식간에 30여명으로 늘었다.
극단적 상황을 추정하고 현장 수습에 들어간 경찰은 관리사무소를 통해 해당 아파트의 인적사항을 신속히 파악했다. 40대 부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이어 인터폰과 관리사무소에 적힌 집전화, 휴대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생존’을 확인하려는 통화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 경찰의 고민은 깊어졌다. 한동안 강제 진입 여부를 고심하던 경찰은 같은 날 10시20분쯤 집안에 부부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했다.
외부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다른 가족이 부부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신고자로부터 전해 들었던 부부싸움의 강도로 미뤄볼 때 그냥 현장을 떠날 수는 없었다.
정적이 흐르는 아파트 내부의 상황을 답답하게 여긴 경찰은 결국 인질극이나 테러 등 강력사건을 전담하는 경찰특공대까지 이례적으로 배치하는 배수진을 쳤다.
지난해 5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법 시행에 따라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이나 체포 영장이 없어도 강제로 가정집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경찰특공대는 이에 따라 “부부가 모두 무사한지 확인되면 문을 강제로 열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설득했으나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접한 다른 가족이 “괜찮으니 문을 열고 나오라”고 달랬지만 굳게 닫힌 문은 결코 열리지 않았다.
경찰은 마지못해 119구조대와 함께 강제로 문을 열고 아파트로 들어가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부부싸움을 하던 남편과 아내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이웃 주민들에게 창피해서 도저히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경찰관들까지 이렇게 출동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내와 다투던 남편 이모(45)씨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과 119구조대는 쓴웃음과 함께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경찰은 이날 아내에게 욕설을 하고 손바닥으로 얼굴 등을 수차례 때린 혐의(가정폭력)로 남편을 불구속 입건하는 것으로 현장상황을 매듭지었다.
경찰 관계자는 “7시간을 밖에서 대치하면서 수십여 명의 경찰인력 등이 헛고생을 하고 행정력이 낭비되는 결과가 됐지만 극단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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