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김 사장, 조원희 “신현준 숨은 은혜, 아직 못 갚고 있다”

‘그 겨울’ 김 사장, 조원희 “신현준 숨은 은혜, 아직 못 갚고 있다”

기사승인 2013-04-10 12:01:01


[인터뷰] “DSLR은 어렵다? 어렵지 않다!” “사람이 미래다” “불리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가 출연한 광고는 이상하리만큼 장면보다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로 읽혀진 문구가 생각난다. 그런 힘을 광고주가 놓칠 리 없다. ‘따뜻한 신뢰감’ ‘조용한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는 공익에서 금융, IT에서 교육까지 수많은 분야의 광고에서 러브 콜을 받았다. 특유의 말투를 흉내 낸 또 다른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의 직업은 성우가 아니다. 배우가 본업이다. 1985년 1월 유인촌, 김갑수 등 당시 쟁쟁한 배우들이 활동했던 현대극장에 입단해 연기를 시작했고,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거쳐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28년차 배우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업계에서는 인정받아 서일대학교과 경기대학교 미디어엔터테인먼트교육원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고 인덕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대중과의 거리는 아직 멀다.

그의 이름은 조원희.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오수(조인성 분)를 괴롭히는 김 사장으로 시청자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지난 4일 서울 상암동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조원희에게 ‘대중의 사랑에 대한 갈증’을 물었다. 답은 솔직했다.

“갈증, 크죠. 제 목소리는 아셔도, 또 배역은 기억하셔도 그게 저인 줄은 모르는 분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인기와 성공만 생각하고 달려왔다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거예요. 저는 늘 어제와 다른 새로움을 꿈꾸고, 그렇게 조금씩 여러분께 다가가고 있습니다.”

애기는 꽤나 오래 전, 군복무 전후 뮤지컬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극장에 입단한 건 다른 무엇에 합격한 것보다 더 큰 기쁨이었어요. 당시 얼굴 허연 놈이 ‘아침이슬’ 크게 부른 덕에 안은 행운이었는데, 들어가서 뮤지컬만 하게 됐어요. ‘어? 나는 연기를 배우고 싶었는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척 재미있어서 군대 가기 전까지 ‘레미제라블’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의 무대에 올랐죠. 뮤지컬의 인연은 제대 후에도 이어져서 롯데월드예술극장에 캐스팅돼 2년 정도 뮤지컬을 더 했습니다.”

“월급도 많았고 주연으로 성장해 뮤지컬 쪽에서는 스타 자리에 있었어요. 그냥 그렇게 주욱 달려갈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토니 역을 할 때 제 안에서 뭔가 다른 것이 싹텄어요. 마침 그때,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메이크업 지울 때까지, 노부부가 30분을 복도에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미국에서도 봤는데 당신이 한 오늘의 공연이 더 좋았다. 기다려서 악수 한번 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얘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말씀하시는데 부끄러웠습니다. 당시 남경주 씨랑 더블캐스팅이었는데, 경주 씨는 굉장히 잘했고 저는 확실히 그보다 못하다고 여기던 차였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으니 정말 부끄럽더라고요. ‘칭찬이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자. 나의 이 정도 연기에도 감동을 받으셨다는데 내가 더 잘하면 더 많은 분들이 행복해지시지 않겠나. 나가자!’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과감히 뮤지컬 무대를 떠나 대학로로 나갔습니다.”

안정을 버리고 도전을 택한다는 것, 말은 쉽지만 생활인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연극 쪽으로 가니 아는 사람 없어 막막하고, 돈도 못 벌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목구비 뚜렷한 생김새와 목소리 덕택에 점차 배역을 맡게 됐고, 5~6년 고생하니 자리가 잡히더라고요. 1년에 150만 원 벌면 많이 버는 생활이었지만, 정말 정신없이 행복하게 살았어요. 오전에 연습하고, 오후에는 그 다음에 올릴 다른 것 연습하고, 저녁에 공연하고. 로테이션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제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오는 만족감. 정말 그걸로 충분할까.

“연극만 하다가 오랜만에 뮤지컬 ‘42번가’ 쫑파티에 갔어요. 그때 동료들이 ‘너, 대학로에서 떴더라. 연극 선배들이 네 칭찬 많이 하더라고. 진중하고 섹시한 배우가 떴다고 말야’라고 말해 주는데, 어쩌면 저는 그 한마디로 족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풍토로 보면 ‘쟤. 뮤지컬배우 출신이야’라는 말이 비아냥 아닌 비아냥으로 들리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야, 그래도 네가 참 뮤지컬배우 이미지 격상 시켜 줬구나’ 하는 얘기를 들으니 오랜 고생을 잊을 만큼 기분이 좋았지요.”



얘기를 나눌수록 조원희라는 배우는 금전적 보상이나 인기, 상패보다 ‘인정’을 중시한다는 게 실감됐다. “정극하면서 인정받은 것은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예요. 연기 못할 때 지도받은 배우협회 회장님께서 제안해 주신 배역이었기에, 책을 보지도 않고 출연하겠다고 한 연극이었지요. 옛날에 배운 게 있어서 돈도 받지 않고 해야지 마음먹은 참이었는데, 책을 열어보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너무 좋은 작품이었던 거예요.”

‘고등어’가 가져다 준 인정, 이쯤 되면 예상하겠지만 ‘상패’가 아니다.

“서울연극제 시상식이 있었어요. 기자 분들께서 시상식 전날 제작사 대표 등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 조원희 씨 남자연기상 받죠?’라고 물었다더라고요. 상을 받으려면 봄에 신청해야 되는데 극단 대표가 신청을 안 하셨대요. 신청 시기가 공연 올리기 전이었는데, 제가 연기상을 받을 만큼 잘하리라 생각지 않으셨기 때문이죠. 공연 올라가고 대표가 사과하셨어요(웃음). ‘원희야, 네가 이렇게 장족의 발전을 할 줄 몰랐다’면서요. 기자 분들이 인정해 준다면 상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전화들을 주셨다면 인정받은 거네’ 하고 웃으며 넘겼습니다.”

‘고등어’로 주목받은 후 영화 쪽에서 출연 제의가 왔다. 강제규 감독이 제작자로 나선 ‘단적비연수’였다. 최진실, 설경구, 김윤진, 이미숙, 김석훈에 이어 6번째로 큰 주연급 배역이었다.

“제가 맡은 건 ‘한’이라는 인물이었어요. 그 영화로 뜰 뻔했죠. 강제규 감독도, 이미숙 선배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뜰 배역이었어요. 그랬는데 영화가 안 됐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영화를 보신 분들이 저를 두고 ‘김명곤 선배야?’ 했다더라고요. 기자 분들 중에도 김명곤 선배로 본 분들이 꽤 계셨고요. 영화 쪽과는 그렇게 첫 단추를 꿰게 됐네요.”

행운보다는 비운에 가까운 인연으로 시작된 영상매체에서의 연기 활동. 승승장구 잘나가기보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다. 함께 출연한 중국인 배우들이 중국말로 얘기를 걸어올 정도로 완벽하게 중국인 악역을 소화했던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의 최복근, 짧은 출연에도 짙은 인상을 남긴 ‘아이리스’의 북한 핵물리학자 홍승룡, 영화 ‘간기남’에서 부인(박시연)과 애인(윤재) 두 명의 김수진과 수위 높은 베드신을 연기한 남영길, 그리고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악랄한 사채업자이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흔들리는 김 사장은 결코 큰 배역은 아니지만 시청자와 관객의 눈을 잡고 마음에 들기 충분했다.

“1년에 두 편이라도 꾸준히 작품을 한다면, 저를 더 많이 기억해 주실 거고 좀 더 대중 가까이에 있을 거예요. 근데 그렇질 못하니까, 배역을 할 때는 알아봐 주시고 인사 건네주시지만 작품이 끝나면 또 그렇게 잊혀지는 것 같아요. 변명을 보태자면, 제 얼굴이 배역마다 다르게 보이나 봐요. 심지어 진성이(김범) 엄마께서 종방연 때 저게 ‘근데, 누구시더라’ 했을 정도로 연기를 하는 제 모습이 평소와 너무 달라서 더 알려지지 않는 것 같네요.”

하지만 조원희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배우로서는 좋은 것 아닌가 하기도 해요. 인기도 좋지만, 새로운 색을 칠할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배우, 그래서 배우 자신이 아니라 그 배역이 보이는 배우, 괜찮지 않나요?”

조바심은커녕 40대에 대학교에 편입하고, 현재 석사 과정을 밟으며 계속해서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차근차근 걷고 있다.

“제가 연기 실전론에는 강하지만 용어와 연기의 역사에 약하다는 걸 강의할수록 절감했어요. 배워서 가르쳐 줘야겠다 싶었어요. 떳떳한 강사가 되고 싶어서 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돈과 명예가 아니라 철학적으로 연기 소통을 할 수 있고, 제가 가진 작은 거라도 나눌 수 있는 자리인데 열심히 해야지요. 그렇게 청춘들과 함께 놀고, 늦깎이 학생으로 살아선지 너무 좋아요. 나이 들지 않는 피터팬이 된 것처럼 늘 하루하루가 새롭고 행복합니다.”

조원희는 ‘오늘의 행복’의 공을 쉼 없는 자기발전의 노력에 두지 않았다. ‘신현준’이라는 이름이 그의 따뜻한 목소리를 타고 나왔다.

“영화 ‘블루’ 때 처음 만났어요. 그때도 동생임에도 조언을 많이 해 줬지요. 형 성격 바꿔야 한다, 제작자 파티할 때 자주 참석해라, 눈에 들어야 한다, 그런 걱정들이요. 영화 끝나고도 현준이가 캐스팅에 도움을 많이 줬어요. ‘카인과 아벨’도 현준이가 의사 역에 추천해 주며 오디션을 주선해 줬는데, 제가 최복근 역이 욕심나서 김형식 감독님께 기회를 주십사 청해서 연이 닿은 배역이었지요.”

“그 외에도 늘 기회가 되면 소개를 해 줬어요. ‘형, 소개는 할 수 있지만 오디션은 다 봐야 해’ 지켜야할 선을 아는 것도 맘에 들었고, 그래도 내 연기에 대한 믿음은 있나 보다, 자신 있게 이런 배우 있다 추천할 만큼은 되나 보다 싶어 고마웠고요.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에 신현준이 있어요, 그런데 그 은혜를 아직 못 갚고 있네요.”

잔잔한 호수 같은 웃음으로 흔들림 없이 오늘 살아가는 그에게 부족한 건 없어 보였다. 단지 소년 같은 그가 무엇을 바란다고 말하는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저를) 알려야 되나 했지만, 지금은… 그냥 지나가도, 누가 봐도 ‘배우다’ 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이 짓을 계속 한다면 말이요. 또, 배우로서의 제 장점이 뭘까 생각해 보면 타고난 목소리와 나쁘지 않은 웃음인 것 같아요. 푸근한 삼촌, 푸근한 아버지를 하면 좀 나을 것 같은데 아직도 시기상조인 것 같고요. 일단은, 일상적이면서도 가슴 절절한 역할을 드라마에서 하고 싶네요.”

“음…, 잘하는 배우, 열심히 하는 배우가 아니라 ‘좋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기가 보이는 게 아니라 ‘아~ 좋다!’ 감탄사가 들어가는 배우이고 싶어요.”

2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는데,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대한 부분이 적다 싶었는지 이 얘기만은 꼭 해야 한다며 건넨 이야기.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저도 드라마를 20~30편 했는데, 사실 한두 달 지나면 배우고 스태프고 다 지쳐요. 그런데 이번엔 모든 사람이 다 발랄하게 웃었어요, 배우며 스태프며 입 모아 ‘우리 현장 너무 좋다’고 얘기할 만큼 촬영현장이 항상 밝았습니다. 국내에서 최초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바로 이걸 가능하게 했던 게 연출해 주신 김규태 감독님의 힘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김 사장을 위해서 렌즈를 바꿔 화면 각을 벌려 주고, 배우가 하는 대로 다 할 수 있게 그래서 애드리브도 많이 할 수 있게 배우를 편하게 해 주고, 그러면서도 각 배우의 개성을 끌어내 주는 감독이세요. 그런데 그걸 강압이 아니라 덕으로 이끄시니 분위기가 밝은 거죠. 말 그대로 대단한 덕장이세요. 덕분에 많이 배웠다는 말씀, 감사하다는 마음, 꼭 전하고 싶습니다.”

철들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내일을 위해 오늘을 갈고 닦는 성실함을 지니고 감사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는 배우 조원희. 대기만성이라고 했던가. 끝없는 배움의 길에 서 있다는 그의 깊이를 아는 아름다운 멜로가 보고 싶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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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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