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정년연장, 50대 세대권력의 전리품?

[친절한 쿡기자] 정년연장, 50대 세대권력의 전리품?

기사승인 2013-04-27 12: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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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칼럼] 제 정년이 연장됐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그러리라고 봅니다. 이런 행운이 없네요. 봉급쟁이 친구들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양 귀가 입에 걸렸습니다. 동년배고 선후배고 모이면 화제가 단연 정년연장입니다.

국민일보 지난 24일자 '58년 개띠 살아났다'는 1면 정년연장 기사는 화제더군요. '58년 개띠'는 6·25 한국전쟁 직후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상징이기 때문이죠. 58년생 직장인은 사규상 통상 58세가 정년인 셈인데 2016년부터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60세 정년보장 의무화'가 실시되면 정년이 2년 연장됩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59년 왕십리'(가수 김흥국의 노래)로 상징되는 이들 또한 함박웃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60년대 초반생들도 이후 일이야 어찌 전개되든 큰 선물을 받았네요. 저도 베이비부머입니다. 어느 날 불쑥 정년연장이 주어졌어요.

한국의 50대들. 이들은 정확히 말해 '세대 권력자'들입니다. 권력이란 뉘앙스가 어찌 느껴지든 인구생태계의 우월적 지위에 있지요. 생로병사의 순리에 따른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우리입니다.

이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됐었죠. 보수·진보의 틀을 놓고 세대 간 싸움 양상을 보인 투표 행위에서 결정권(casting vote)을 행사했는데 보수의 손을 들어준 것이죠. 이후 젊은 세대는 한국의 50대에게 등을 돌렸고요. 50대의 투표 응집력이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켰다는 분석에서입니다.

한데 그 우리가 박근혜 정권 아래서 정년연장의 혜택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이나 정치공학적으로 놓고 보면 수혜 같기도 합니다. 경제 논리로 보면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뺏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우리의 10∼20대 때는 박정희 대통령 통치 시절이었습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군사독재 정부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시 제3세계 국가의 엘리트는 군인이었죠. 많은 국가에서 그 엘리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고요.

1961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반공(反共)을 국시로 경제부흥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마치 나치의 괴벨스 선전상에게 당하는 것처럼 철저히 훈육됐어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새마을운동 노래인 '잘살아보세'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구호'에 따라 사는 것이 일상이었죠. 우리에겐 두 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북괴'였고, 두 번째는 '가난'이었습니다. '조국 근대화'란 슬로건 아래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됐고, 너나없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죠. 촌놈들의 시대였습니다.

떠나온 농민은 대개 도시 빈민이 됐습니다. 부산 신발공장, 구미 전자단지, 마산 수출자유지역, 청계천 봉제공장 등은 최저생계비도 못 받는 노동자들의 거친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70년 겨울, 청계천 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자살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고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72년 초헌법적 10월유신이 선포됐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79년 부하의 총탄에 죽기까지 숨죽이는 세월이 계속됐습니다. 저야 독재인지 뭔지 몰랐죠. 다만 조국과 박정희 대통령을 욕하면 공산당인줄 알았어요. 우리 부모는 기계처럼 일했습니다.

고3이었던 80년 5월 계엄이 떨어진 일요일, 공부하기 위해 집 앞 성균관대 정문을 지나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았던 기억이 악몽처럼 떠오릅니다. 성대 수위실 뒤쪽이었죠. 대학생인줄 안거죠. 방화수에 머리 처박히며 맞던 여대생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저는 부모 복이 많아 대학을 다녔습니다. 지금이야 아무나 가는 대학이지만 당시는 10명 중 2명 정도였죠.60∼70년대 저임금을 바탕으로 수출에 주력한 결과 70년대 말부터 끼니 굶는 일은 없었죠. 80년대 들어선 한국경제의 호황으로 다들 쉽게 취업을 했고요. 취업 후 우리는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죽어라고 일했습니다. 가정 돌볼 겨를이 없었죠. 요즘 가정 내 '왕따'입니다. 한데 이렇게 일만 하며 사는 게 맞나 싶으니 정년이 다가왔던 겁니다.

저는 요즘 20대 시절 교회 청년부 선후배들과 자그마한 모임을 합니다. '경청'이란 타이틀로 모이죠. 지난해 말부터 두 달에 한 번 모여 복음과 상황을 얘기합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살다가 30여년 만에 다시 모이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대개 베이비부머입니다. 20대 우리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청합니다.

50대는 '조국 근대화'에 따른 교육과 복지의 첫 수혜자입니다. 그리고 세대권력자가 됐습니다. 삶의 회한을 앞세우기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경청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자식과 후배세대가 우리를 딛고 일어섭니다. 밥상머리에서 자식 위해 밥 굶던 부모세대를 딛고 선 50대였음을 기억하십시오.

전정희 디지털뉴스센터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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