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윤창중은 온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말인 것일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과 증언을 종합해 8일 윤씨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진실의 퍼즐을 맞춰본다. 여러 사람의 증언이 나오고 시각이 엇갈리기 때문에 읽어가기가 쉽지 않겠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따라가다보면 진실의 일각이 밝혀질 수도 있다.
윤씨, 밤새도록 인턴에게 전화했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여대생 인턴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신고가 미 경찰에 접수된 8일)새벽 호텔방에서 노크 소리를 듣고 순간 이게 무슨 긴급하게 브리핑을 해야 하는 자료를 갖다주는구나 생각이 들었지 제 가이드(인턴을 가이드라 지칭함)가 올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면서 제가 (속옷 바람으로) 황급히 문쪽으로 뛰어나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일보가 14일 보도한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씨는 이날 새벽 5시까지 숙소인 패어팩스 호텔의 자기 방에서 인턴의 휴대전화로 2~3차례 전화를 걸었으며, 지쳐 잠들었던 인턴이 새벽 6시가 넘어서야 전화를 받자 욕설을 섞어 질책하며 “일이 있으니 방으로 오라”고 했다고 한다. 방으로 찾아갔을 때 윤씨는 알몸으로 있었다는 것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발표였다. 주미 대사관은 이런 통화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윤씨의 거짓말 여부를 입증할 주요 증거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윤씨가 미국 경찰에 신고 당한 날 아침 자신의 수행 차량을 버리고 사라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워싱턴에서 윤씨가 이용한 전세 승용차의 운전자 A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추행 신고가 미 경찰에 접수된 8일)아침에 나가야 하는데 7시 반이 돼도 안 내려오더라. 그래서 A씨한테 전화를 했는데 다른 여성이 받았다. 이 여성은 격앙된 목소리로 ‘A씨는 이제 일 안 하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래서 계속 기다리는데 얼마 있다 윤 대변인이 남자 수행원과 함께 까만색 핸드캐리 가방을 가지고 내려왔다. 조찬 행사장에 데려다 주고 기다리고 있는데 몇 십 분 후 남자 수행원이 허겁지겁 나와 ‘대변인이 지금 없다’고 했다. 내가 ‘차가 여기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자 수행원은 ‘나도 귀신에 홀린 것 같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수행원 “대변인이 사라졌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
운전 기사를 놔두고 윤씨가 사라졌다는 8일 아침 7시30분은, 피해 여성이 호텔방에서 울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청와대와 대사관 직원들이 급히 ‘설득’하려 한 것으로 알려진 시간이다. 한겨레신문은 이 시각 청와대와 대사관 직원들이 여성의 호텔 방에 들어가려 했으나, 피해 여성은 룸메이트인 대사관 여직원과 함께 방문을 걸어 잠그고 “더 이상 근무하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경찰에 윤씨를 신고한 시각은 아침 8시다.
사건을 종합하면, 결국 사건의 파장이 커지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시각에 윤씨가 현장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7시 30분 경 윤씨가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여직원의 호텔방 앞에 갔다는 전언도 있지만, 남자 수행원이 ‘귀신에 홀린 것 같다’며 없어졌다고 말한 증언이 나옴에 따라, 윤씨가 독단적으로 숙소를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남기 수석과 윤씨의 대화, 두가지 버전
이는 윤씨가 11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야반도주하듯이 워싱턴을 빠져나갔다는 것은 완전히 사실무근”이라며 “경제인 조찬행사를 마치고 수행원 차량을 타고 오는데 이남기 홍보수석에게서 전화가 와서 영빈관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이 시각은 이미 성추행 사건이 청와대 행정관 등 정상회담 수행원들 사이에 알려진 때여서, 이 수석이 이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윤씨를 보자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윤씨는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 앞에 나타난다. 여기까지 윤씨가 자신의 전세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직전인 오전 9시20분쯤 영빈관 앞에서 윤씨와 이 수석이 나눈 대화 내용은 두가지 버전이 있다. 윤씨가 밝힌 내용은 이렇다.
이 수석 :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윤씨 : 제가 잘못이 없는데 왜 제가 일정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단 말입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해명을 해도 이 자리에서 하겠습니다.
(잠시뒤)
이 수석 : (오늘)1시30분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해놨으니까 이 곳에서 핸드캐리 짐을 찾아서 윌러드 호텔에서 핸드캐리 작은 가방을 받아서 나가라.
이 수석은 윤씨가 밝힌 내용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했다. ‘재수가 없다’든지 ‘빨리 한국으로 가라’‘비행기를 예약해놨다’는 얘기를 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수석은 자신도 윤씨를 만나기 직전에야 성추행 소식을 듣고 황망했던데다, 박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임박한 시점이어서 영빈관 앞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했다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 수석 : (성추행 사건이) 사실이냐.
(윤씨의 답변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앞서 아침 8시쯤 전광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성추행 사건을 접하고 윤씨와 통화했을 때는 ‘별일 없었다,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수석 : 일단 나는 지금 대통령을 모시고 가야 하니 전광삼 국장(선임행정관)과 상의해서 결정하라.
윤씨 : 갈 곳이 없다.
이 수석 : (호텔방 열쇠를 주며) 윌러드 호텔의 내 방에 가 있으라.
전광삼 선임행정관은 10시 30분 시작한 박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중에 윤씨에게 전화가 걸려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윤씨가 언급한 내용은 없다. 전 선임행정관이 전한 통화 내용은 이렇다.
전 국장 :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한 것 같다. (상황을 추가로 설명. 전 국장은 윤씨에게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지위였다.)
윤씨 :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전 국장 : 상황을 더 알아보겠다.
전 선임행정관은 이 시각 윤씨와 수시로 통화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문화원과 대사관 등을 통해 진행 상황을 알아본 뒤 윤씨에게 추가로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전 선임행정관이 최종적으로 요약해 밝힌 두 사람 사이의 대화 내용은 이렇다.
전 국장 : 일단 미국 경찰에 소환돼서 조사 받는 수도 있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수사 공조 체제가 되어 있으니까 귀국해서 수사 받는 경우도 있을 거다.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하라.
윤씨 : 귀국하는 걸로 결정했다. 항공편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전 국장 : 평일이고 하니까 비즈니스 석은 비어있지 않겠습니까.
윤씨 : 여권을 갖다 달라.
전 국장은 문화원장을 통해 여권을 전달했고, 그 이후 상황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듣기로는 (윤씨가) 호텔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가셔서 자비로 항공권을 끊어서 귀국하신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실을 밝혀줄 열쇠는?
이 시점에서 엇갈린 진실을 밝혀줄 열쇠가 있다. 항공권 예약과 발권을 누가 언제 했는지 여부다.
대한항공에 한국행 항공편이 예약된 시각이 이날 오전 6시52분이었다. 청와대가 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사항이다. 이 시각은 여자 인턴이 윤씨의 방에 나타났다가 내려간 뒤 성추행 문제를 제기한 직후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 시점까지 이남기 홍보수석을 포함한 청와대는 사건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항공권을 예약한 사람은 대사관 직원인 것으로 한겨레신문이 보도했다. 윤씨가 지시했는지, 이 수석이나 전 국장이 지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윤씨는 이 수석이 “1시30분 항공편이 예약돼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으나 이 수석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항공권을 예약했다는 대사관 직원을 찾아 누구의 지시를 받고 예약했는지 밝혀내면, 청와대가 윤씨의 도피를 지시했는지 아니면 윤씨가 스스로 도피를 준비한 것인지 밝혀낼 수 있다. 청와대와 윤씨의 증언이 엇갈리는 시점이니, 이 직원의 증언을 받아내면 사실 관계가 명확해진다.
공항에서 티켓이 발권된 시각은 오전 3시간 뒤인 9시54분이다. 이 시각은 이 수석과 윤씨가 영빈관 앞에서 대화를 나눈 직후가 된다. 항공권 예약은 누구든 할 수 있고, 발권은 원칙적으로 탑승자가 본인의 신분증을 가지고 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신분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발권할 때 결제는 윤씨의 신용카드로 이뤄졌다.
그러나 전 선임행정관이 윤씨와 귀국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시각은 박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된 10시30분 이후다. 항공권 발권이 그 전에 이뤄졌으니 사실 관계가 맞지 않다. 전 선임행정관은 말을 바꿨다. 애초 의회 연설 중에 윤씨와 통화했다고 설명을 했던 것은 10일 밤이었는데, 윤씨의 기자회견이 다음날 이뤄진 뒤 그날 저녁에 기자들에게 추가 해명을 하면서는 윤씨와 통화했다는 시각을 바꿔 진술했다.
기자들이 “전 국장 말씀으로는 어제(10일) 설명할 때 8일 10시30분부터 40분 사이 의회연설이 시작된 직후 윤 대변인하고 통화하면서 고발 사실 가르쳐 줬다고 하는데”라고 질문하자 전 선임행정관은 “아니다. 8시 전이었다. 조찬 전과 그 이후 윤 대변인하고 계속 통화했다. 8시에서 9시 사이에 이 수석님한테 보고하기 전까지 수시로 했다”고 정정했다.
윤씨와 전 국장이 귀국 문제를 논의한 것이 9시 전이라면, 이 수석이 영빈관 앞에서 윤씨에게 “전 국장과 상의하라”고 말한 것은 사실상 귀국을 종용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자신의 호텔방에 들어가 있으라며 열쇠까지 내어 줬다면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숨어 있으라고 한 모양새가 된다. 윤씨가 9시54분에 공항에 도착해 발권했다면, 이 수석과 대화를 서둘러 마친 뒤 곧바로 택시를 타고 공항에 달려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퍼즐 맞추기
이 대목에서 기억해야할 증언이 있다. 이날 아침 7시30분쯤 윤씨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사라졌다는 운전기사의 증언이다. 퍼즐을 종합해서 맞추면 이렇게 된다.
① 윤씨는 8일 새벽까지 피해 여성의 휴대폰으로 여러차례 전화를 걸었다.
② 새벽6시경 윤씨의 방 앞 혹은 방 안에서 뭔가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 여성은 자신의 방 안에서 룸메이트와 눈물을 흘리며 상의했다.
③ 누군가 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윤씨 이름으로 예약했다.
④ 청와대 직원들이 피해 여성의 방으로 달려갔다.
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피해 여성 측의 발언이 나왔다.
⑥ 그 시각에 윤씨는 사라졌다.
⑦ 윤씨는 어디선가 전화를 걸어 전 선임행정관과 귀국 문제를 논의했다.
⑧ 윤씨는 2시간 뒤 영빈관 앞에 나타나 이 수석을 만났다.
⑨ 이 수석은 자신의 호텔방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윤씨는 공항으로 달려 가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탑승시각 3시간 전이었다. 비행기 면세구역은 취재진도 경찰도 닿지 못한다.
아직 사실 관계를 다 확정하기는 어렵다. 사실과 다른 진술, 엇갈린 진술,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입, 대한민국 정부 최고 수뇌부, 청와대 핵심,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하는 말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