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에게 잘린 김처선, 박근혜에게 잘린 윤창중… 같은 정2품, 처신은 천양지차

연산군에게 잘린 김처선, 박근혜에게 잘린 윤창중… 같은 정2품, 처신은 천양지차

기사승인 2013-05-25 13: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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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정치] 1505년 김처선이란 조선시대 내관이 연산군에게 ‘잘렸다’.

2013년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렸다’.

김처선은 정2품이었다. 내관은 궁중 제반 업무를 관장하는 백제 때 용어로 조선시대에는 내시부라고 일컬었다. ‘내관의 새끼냐 꼬집기도 잘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왕을 보필하는 공직자로서 ‘원칙의 기준’이 되어 생활하던 사람들이 내관이다.

성추문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윤창중 전 대변인은 조선시대로 치면 왕의 문한(文翰)을 다루는 홍문관 대제학으로 정2품 벼슬이다. 한데 두 사람의 처신은 천양지차다.

김처선은 연산군 초기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다. 윤 전 대변인도 그랬다. 김처선은 연산군에게 규간(規諫)하다 왕이 진노해 팔다리가 잘려 죽었다. 규간은 ‘옳은 도리나 이치로써 왕의 잘못을 고치도록 진언’하는 것을 말한다.

연산군은 모친 폐비 윤씨 문제로 어느 시점부터 폭군이 되어 신하 부인들과의 간통도 서슴지 않았다. 창기 출신 장녹수가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했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고 했을 만큼 여색에 빠져 있었다. 장녹수는 왕이 종친이나 사대부 부인을 강간하는 걸 도왔다고 한다. ‘막장 왕권’이었다.

그런 왕에게 내관이란 자가 “늙은 것이 네 조정을 섬겨서 대강 사기(史記)를 읽었사온데 전하와 같은 분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어찌 나라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니 온전할 리 있었겠는가. 직접 칼을 뽑아 처선의 사지를 도륙낸 연산군은 그래도 성이 안 풀려 활로 쏘기까지 했다고 한다. 야사에는 혀를 끊고, 배도 갈랐다고 전한다.


뿐인가. 처선의 자식을 죽이고, 그의 집을 부수어 못을 팠다. 부모의 무덤도 뒤집어 버렸다. 거기서 끝내면 ‘폭군’이란 말이 붙지도 않는다. 신하 중 처선이란 이름을 금지했고, 처서(處暑)에 ‘처’자가 있다 하여 조서로 고치도록 명했다. 처선의 본관 전의현(지금의 세종시)은 아예 없애 버렸다. 폐현한 것이다.


어쨌든 윤 전 대변인은 ‘잘렸다’. 공식 용어로 ‘직권면직’됐다. ‘공무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의 일방적 의사에 따라 공무원을 그 직위나 직무에서 물러나게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신체나 정신 이상, 근무성적이 나쁜 경우, 직제 정원 개편에 따라 예산 감소로 인한 경우, 장기 요양 후 직무수행 불가 등이 직권면직 이유에 해당한다. 관직을 박탈하는 파면보다는 약하다. 윤 전 대변인의 희대의 성추문 의혹 사건은 미국 사법부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청와대 사람들’은 김처선의 자세를 ‘오늘날의 사기(史記)’로 삼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 잘난 사대부들이 연산군의 악행에도 입 꾹 다물고 있으니 오죽 답답했으면 내관이 나서서 직언을 했을까.



사대부 출신 가운데 기억할 사람이 있긴 하다. 훗날 이원익(1547∼1634)이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광해군에게 여색에 대한 근신을 직언하고 낙향했다. 그는 선조 광해군 인조 등을 거치며 다섯 번이나 영의정을 지냈음에도 두어 칸짜리 초가에 살았고, 퇴관 후 조석거리가 없을 정도로 청빈했다.



지금은 그런 절대권력의 시대가 아니다. ‘대형 사고’를 쳐도 직권면직이 고작일 정도로 신분보장이 되어 있다. 이 호시절의 고위 공직자들, 성추문 사고 말고 ‘바른 말 사고’나 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쇄신한다고 지혜를 모은 생각이 ‘해외 순방 시 여성 인턴 배제’와 같은 ‘뇌 민주화(?)’여서 갑갑하긴 하지만….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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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jhjeon@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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