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 '여대생 청부살인사건'과 검사 판사 의사, '그들만의 리그'에 피해자 아버지 나서

[전정희의 스몰토크] '여대생 청부살인사건'과 검사 판사 의사, '그들만의 리그'에 피해자 아버지 나서

기사승인 2013-06-13 15:35:01


[친절한 쿡기자- 전정희의 스몰토크 lite] 가벼운 코너이나 오늘은 무거운 얘기 좀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형벌의 종류를 보면 기함할 정도로 무섭습니다. 사극에서 나오는 참수형, 사사, 물고(곤장) 정도는 아실 겁니다. 여기에 온몸을 회를 떠죽이는 능지처사, 죽은 사람의 목을 베는 육시, 시신을 관에서 꺼내 토막을 내는 부관침시 등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또 다른 형벌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압슬형은 큰 맷돌을 무릎 위에 올려놓아 다리뼈를 부숩니다.

요참형은 허리를 잘라 죽입니다.

거열형은 사지를 찢어 죽입니다.

낙형은 달군 인두로 얼굴을 지집니다.

쇄골표풍은 시신을 관에서 꺼내 뼈를 빻아 들에 뿌립니다.

정조 임금, 무식한 사법인에 ‘한글판’ 법률책 주며 공정한 법집행 당부

역모를 꾸민 이들 일수록 가혹한 형벌이 가해집니다. 단 숨에 죽이지도 않고 뼈를 부수는 압슬형이 우리를 경악케 합니다. 18세기 이런 잔혹한 형집행이 적잖이 문제가 된 모양입니다. 영조는 가혹하거나 억울한 형벌이 없도록 하기 위해 고문과 압슬형을 금했습니다. 연좌 조항도 없앴고요.

한데 왕권이 약하면 지방 관아나 사대부에게 먹힐 리 없지요. 고을 수령이나 사대부들은 중앙의 눈을 피해 가렴주구를 일삼았고 억울한 죽음을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정조는 공정한 법집행을 권하며 ‘증수무원록’을 편찬했습니다. 무식한 지방 수령 등이 잘 모를까봐 한글로 풀어쓴 언해본까지 냈지요. 요지는 ‘공정한 법집행을 하라’였습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그 후로 2~3세기가 지났음에도 ‘공정한 법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지방 수령과 매관매직한 사대부 같은 이들이 뻔뻔하게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아무도 처벌 받지 않습니다.

우리를 분노케 했던 ‘재벌가 사모님의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을 예로 들어 보지요. 청부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재벌가 사모님은 형 집행정지로 4년 간 교도소 밖 병원 특실 등에서 생활했습니다. 죄 없는 20대 여대생을 사위의 내연녀로 의심해 청부살인을 했던 윤모(여·68사진)라는 분 얘기지요.

그가 형집행 정지를 받아 병원 특실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대학병원 의사의 진단서를 바탕으로 그런 허가를 했겠지요. 대한민국은 인권국가이니 재소자라도 아프면 형집행정지 등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 백번 맞습니다.

한데, 윤모씨의 형집행정지가 거짓이었다는 겁니다. 검찰이 진단서의 진위 여부 따지지 않았고, 사후 감시도 엉망이었다는 거지요. 윤씨에 대해 유방암, 우울증 등 12개 병명의 진단서를 발급한 박모 의사라는 분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요.

검찰은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를 다루자 지난달 21일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를 열어 윤씨에 대한 형집행정지를 취소하고 재수감했습니다. ‘유전무죄’라는 국민의 비판 여론이 커지자 앗 뜨거라 싶었던 거지요.

그 검찰과 의사. 18세기 상황을 적용하자면 수령과 사대부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형집행정지를 승인했던 당시 한 검사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원에서 엄청난 양의 진단서가 왔고 (윤씨의) 눈수술이 필요하다고 해서 승인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3차례에 걸쳐 형집행 정지가 됐으니까 이를 승인해준 수원, 의정부, 대구지검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겁니다. 한데 현재까지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병원과 의사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역시 최근 일입니다. 아래 링크를 읽어보시죠. 참고로, 읽어보시기 번거로운 분들을 위해 한 문단으로 정리하겠습니다.

‘40대 치과 의사가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피해 차량운전자는 미쳐 사고 차량서 빠져 나오지 못해 불타 죽었다.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의사가 의료봉사를 한 경험이 있다며 집행유예 선고했다.’

▶ '하나님 판사' & 음주운전 치과의사가 몬 벤츠에 치여 숨진 마티즈 운전자의 원혼

피살 여대생 아버지, ‘돈 위에 법있다’ 증명하겠다

두 경우의 법조와 의료계 분들, 앞서 언급한 조선의 수령, 사대부와 어떻게 다르지요? 근대적 사법제도가 확립됐는데도 내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들에게도 알아먹기 쉬운 ‘언해본’이 필요한 걸까요?

억울하게 딸을 잃은 그 여대생의 아버지, “끝까지 싸워 ‘돈 위에 법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딸에게 꼭 보여주겠다”고 했답니다. 한데 왜 돈 위에 법이 있다는 사실을 피해자 아버지가 증명해야 하죠? 사법권이 증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또 교통사고 피해자가 가해자 측과 합의해 위자료를 받았다 할지라도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증명을 누가해야 하죠? 법조인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유전무죄’인 ‘그들만의 리그’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 국민 누구도 재벌 사모님 정도의 우울증 앓고 있습니다. 다만 병원 특실 갈 돈이 없을 뿐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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