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北과 신뢰할 수 있는 협상 원한다”

백악관 “北과 신뢰할 수 있는 협상 원한다”

기사승인 2013-06-17 00:53:00
[쿠키 지구촌] 백악관이 북한과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미국에 고위급 양자 회담을 제의한 데 대한 첫 반응이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미국은 항상 대화를 선호하며, 사실 북한과 공개적인 소통 라인이 있다. 우리(미국)는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다다를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을 원한다. 그러려면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준수하는 것을 포함해 국제 의무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북한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다. 북한이 이런 의무를 준수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주는 조처를 하기를 기대한다.”

헤이든 NSC 대변인의 성명은 북한이 제의한 양자 회담을 직접 거부하지는 않으면서도 추가적인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과거에도 6자회담 등에서 핵개발 동결을 약속하고서도 이를 파기한 적이 있는 만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행동이 뒷받침돼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반응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 그러나 먼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 또 ‘공개적인 소통 라인’을 언급한 것도 기존에 유지해온 뉴욕의 유엔본부를 통해 대화할 뿐, 고위급 북·미 회담이라는 채널을 개설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데니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도 이날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 출연해 북한 국방위의 중대 성명을 보았다며 비슷한 언급을 했다.



“우리는 결실 있는 대화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사실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수단을 가지고 있고, 과거에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대화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무기확산, 핵무기, 밀수와 다른 문제를 포함한 의무를 확인하는 대화여야 한다. 우리는 북한을 어제(16일)의 그런 부드러운 말보다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다. 최소한 현재 북한이 받고 있는 중대한 (안보리) 제재를 피하려는 대화는 없을 것이다. 이 제재는 러시아가 지지했고 중요하게는 중국도 지지하고 있다.”

두 발언 모두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북한의 대화 제의에 대한 백악관의 입장은 어느 정도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평가해보면, 백악관의 반응은 이전의 미국 입장과 동일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다.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틀별대표가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남북관계 진전과 인권문제 개선 없이는 북-미 관계는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밝힌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헤이든 NSC 대변인의 성명이나 맥도너 실장의 발언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국제사회의 의무를 강조했을 뿐 남북관계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NSC가 여기에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을 원한다는 표현을 덧붙인 점이다. 그러면서 제기한 것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3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규탄하고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의 중단을 촉구하면서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한 바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 핵개발과 핵실험에 대해 추가적인 진전을 않겠다는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채널로 백악관은 유엔 안보리와 직접 관련있는 북한의 유엔대표부를 지목했다. 할 얘기가 있다면 유엔 대표부를 통해서 하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직접적인 양자 회담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양자 대화를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밝힌 것이다.

북한의 대미 협상 제안이 남북 당국간 회담이 무산된 뒤에 나온 점도 주목된다. 김계동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북한이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할 때 남한과의 대화부터 추진한 사례가 몇 번 있다”며 “지금 북한은 대외적으로 대화를 할 시기라고 생각을 한 것 같다. 예전과 같이 남한과의 대화부터 추진을 하였으나 남한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자,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북한이 우리와 먼저 대화를 하지 않으면 북·미 양자간 공식 대화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또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과의 당국간 회담은 수석대표의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미국이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기 시작했는지는 이번 주 안에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미 국부부의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한국의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일본의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아주대양주 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대화 제의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한·미·일 3개국 6자 회담 수석대표의 만남은 6개월 만에, 그리고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과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이후 처음이다. 특히 스기야마 국장은 지난달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전격 방문한 바 있다. 북한과 먼저 양자간 대화를 시작한 일본이 미국과 한국에 어떤 입장을 밝힐 것인지도 관전포인트다. 일본의 이런 변화 때문에,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자제해 주길 바라는 한국은 미국을 설득하는데 이전보더 좀 더 불리한 형편이다.

이달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한국은 어떤 방향을 제시할 것인지, 또 주변 국가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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