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 알바’… 스타에 억대 외제차 상납, 팬들은 사채까지

‘조공 알바’… 스타에 억대 외제차 상납, 팬들은 사채까지

기사승인 2013-08-09 23:27:00


[쿠키 문화] 지난 3월 성폭행 의혹이 불거져 충격을 안겨줬던 배우 박시후는 억대의 ‘조공(朝貢)’을 받았다는 논란에까지 휩싸였다. 팬들에게서 1억5000만원짜리 영국산 ‘재규어’ 승용차와 1000만원 상당의 홈시어터를 선물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실 여부가 확인이 안 된 채 성폭행 의혹에 묻혔다.

박시후의 스캔들로 세상에 알려진 연예인 팬클럽 간 선물 공세(서포트)가 도를 넘고 있다. ‘서포트’란 원래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일을 맞거나 드라마 출연, 콘서트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선물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순수한 문화로 출발했다. 이때 연예인에게 주는 선물은 케이크, 도시락 정도다.

하지만 인터넷 카페 등에서 활동하는 팬클럽 사이에 경쟁이 붙으면서 미의(微意·작은 성의)를 넘어섰다. 조선시대 조공과 다름없다 해서 ‘조공 팬 문화’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변질됐다.

조공 품목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도시락이다. 포털 검색에서 ‘연예인 도시락’이라고 입력하면 도시락 제조 업체 노출광고가 뜰 정도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한 연예인 전문 도시락 공급 업체에 따르면 수제 도시락 1개의 최소 가격은 3만원 정도지만 내용에 따라 개당 최고 200만원짜리도 있다. 전복, 게, 인삼, 굴비 등 최고급 식재료를 쓰고 금빛가루 등으로 장식한 상품이다. 음향기기, 가전제품 등도 인기 품목이다.

가수 JYJ 팬들은 앨범 출시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버스나 지하철에 응원 광고를 게시했다. JYJ 팬클럽 사이트엔 지금까지 수차례 1억5000여만원 상당의 광고 집행 내역을 밝히고 있다.

팬들의 비뚤어진 서포트 경쟁이 가열되면서 연예인이나 소속 기획사가 아예 노골적으로 조공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3인조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 A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는 선물 리스트를 아예 팬들에게 공개했다. 가전제품과 컴퓨터, 홈시어터 등을 적시한 것이다. 심지어 부모 선물까지 암시하는 대목이 있어 팬들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를 담아 고가의 건강식품을 전달했다.

최근 컴백한 솔로 가수 B는 작년에 작업실을 얻는 과정에서 ‘생일선물’ 명목으로 팬들에게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음향장비를 받았다. 리스트를 작성해 팬들 간에 선물 목록이 겹치지 않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혼자 사는 집 가구도 이 같은 방식으로 채웠다.

걸그룹 등 일부 여자 연예인들은 명품 구두, 가방, 반지 등을 선물받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랑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가의 조공문화가 형성되다 보니 팬들은 사채를 끌어쓰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충당하는 소위 ‘조공 알바’까지 하고 있다. 사채를 쓰다 이자를 감당 못해 부모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이현주(가명·24·여)씨는 “경쟁 카페에 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그랬었다”며 후회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곽금주 교수(심리학)는 “이는 일종의 ‘쾌락’에 가까운 심리”라며 “애정을 물질로 환산해 자신을 스타에게 어필하겠다는 심리는 경쟁을 낳고 이는 결국 건강하지 못한 팬문화를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연예 기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 안효진 팀장은 “팬들의 과한 선물은 곤란하다”며 “도를 넘은 선물은 기획사 차원에서 돌려보내고 좋은 곳에 기부하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가 선물은 인기 척도… ‘오빠’가 품목 지정하기도

“가끔 괴롭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열혈 팬 강민경(27·여·가명)씨는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좋아하는 스타에게 소박한 정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로 ‘서포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서포트’는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달랐다.

강씨가 좋아하던 가수 K가 컴백하는 무대였다. 팬카페에서는 그를 위해 수십만원짜리 보양 도시락을 준비한다며 모금을 했다. 카페지기는 비교적 나이가 있는 강씨에게 10만원 이상 낼 것을 은근히 강요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K가 출연하는 방송프로그램의 스태프를 위해 100여개의 도시락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씨에겐 다시 8만원의 추가 추렴이 강요됐다.

“다른 카페의 경우 아예 촬영 현장에 ‘밥차’를 부르는 경우도 있어요. 몇 백만원 깨지죠. 가수가 배우로 데뷔해 첫 리딩(대본연습)이라도 들어가면 같이 출연하는 배우와 스태프를 위해 도시락 주문배달을 시켜요.”

이들이 이렇게 ‘조공’을 바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다른 멤버보다 ‘서포트’를 적게 받으면 기가 죽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상한 논리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하다.

이처럼 팬클럽 간 경쟁의 결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세 과시로 드러난다. 조공을 받은 연예인이 SNS ‘인증’이라도 해주면 팬들은 그 위세로 상대 연예인 팬클럽을 제압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조공이 당연한 ‘오빠’, 팬들은 지친다=조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스타들과 팬카페 운영자는 건전한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현상) 문화를 해치는 이들이다.

“자기 계좌에 송금 받는 스타요? 그런 연예인 꽤 있어요. 저와 같이 맹신하는 팬들에게 ‘작업실 앰프가 고장 나 일을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라도 남겨 보세요. 당장 ‘오빠, 제가 도움이 됐으면 해요. 계좌번호 주세요’라고 답하는 팬이 즐비합니다. 약탈 아닌가 하는 생각에 뒤늦게 철이 들더라고요.”

몰지각한 일부 스타는 스태프는 물론이고 자기 가족까지 챙긴다. ‘어버이날 부모님 선물해 드려야 하는데…’라는 말로 백화점 상품권 등을 얻는가 하면 심지어 애완견 애견식 등과 같은 관련 용품을 ‘조공’으로 받기도 한다.

“선물만 받는 건 양반이죠. 스타의 부모 출퇴근 운전수를 자처하는 팬도 있더라고요. 그 부모님 집안 청소를 해 주러 가는 팬도 봤어요. 자기 자녀 생일을 고지해 챙기기도 하고요.”

◇‘조공’ 넣기 위해 투잡 병행, 사채까지…=‘서포트’에는 당연히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몇 백만원에서부터 억원대에 이르기까지 팬카페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모금을 우선하지만 모자랄 경우 팬클럽 운영자가 사비를 털기도 하고, 또 횡령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모 팬클럽은 생일 파티를 열어 고가의 선물을 했으나 회원들의 회비 납부 실적이 좋지 않았다. 운영자는 자신의 카드로 선물을 먼저 샀기 때문에 연체에 시달렸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채를 썼다. 사채를 갚기 위해 투잡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고스란히 빚만 떠안고 퇴장해야 했다.

강씨가 알고 지내던 다른 팬 P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A의 생일을 위해 사채를 썼다. ‘A의 생일인데 기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케이블TV 금융 광고를 보고 300만원을 빌렸다가 원금보다 수 배 많은 이자를 물어야 했다. 팬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찍어 둔 오빠의 사진이나 영상들을 같은 팬들에게 판매해 보태기도 했다.

반대로 고가의 제품을 구입하면서 값을 부풀리거나 잘 아는 거래처를 통해 이익을 남겨 클럽 회원 간 분쟁을 낳기도 한다. 2010년 그룹 ‘티아라’의 팬클럽에서는 티아라를 위해 팬들이 모은 1000여만원을 운영자가 가로채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디시인사이드’ 그룹 동방신기 갤러리(현 JYJ 갤러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악플로 바닥에 떨어진 한 멤버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팬들이 모은 ‘악플러 고소 비용’ 수백만원을 ‘총대’를 멘 한 팬이 몽땅 들고 달아났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오빠 망신’이 될까봐 사건을 덮었다. ‘디시인사이드’ 관계자는 “이러한 사기 사건은 생각보다 꽤 많지만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는 사이트에서 손쓸 길이 없다”고 말했다.



“고맙지만 더 좋은 일에…” 조공 거절한 스타들

‘조공’을 즐기는 연예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팬들의 과도한 사랑을 정중히 거절하거나 기부로 돌리는 연예인이 적지 않다.

드라마 ‘못난이 주의보’의 배우 신소율은 최근 자신의 생일 때 팬들이 전달한 선물을 모두 되돌려 보냈다. 그는 정중히 거절을 하며 ‘너무 감사하다. 더 좋은 곳에 썼으면 좋겠다’는 글을 담아 반환했다. 그의 팬들은 더욱 ‘광팬’이 됐다.

선물을 받는 양만으로 보면 전체 가수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이돌 가수 샤이니의 태민 또한 소속사를 통해 전달된 선물을 모두 돌려보냈다. 소속사 관계자는 “태민이 팬들의 사랑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마음만으로 충분하니 꼭 필요한 곳에 썼으면 한다고 하니 모두 감동하더라”고 전했다.

배우 이승기 팬들은 ‘서포트’ 개념 자체가 다르다. 이들은 이승기의 생일이거나 데뷔 기념일 등에는 아예 팬클럽이 단체로 복지시설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한다. 이때 시설에서 필요한 ‘조공’ 물품을 들고 간다.

그룹 빅뱅 지드래곤의 팬들은 모금된 돈을 지드래곤의 본명인 ‘권지용’ 이름으로 불우이웃에게 기부한다. 비스트 멤버 양요섭 팬들도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다. EXO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봉사하는 복지시설엔 해외 팬들까지 찾고 있다.


이 외에도 적잖은 아이돌 스타나 배우들이 드라마 제작발표회 등에 답지한 팬들의 쌀 화환 등을 복지시설에 기부한다.

슈퍼주니어 최시원은 팬미팅 등을 통해 기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교회를 통해 다른 어느 가수보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김철오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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