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세심한 사실 조사 덕에 60년전 ‘부당 총살’ 배상판결

법원 세심한 사실 조사 덕에 60년전 ‘부당 총살’ 배상판결

기사승인 2013-11-07 17:04:00
[쿠키 사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 위원회)가 장기간 조사에도 밝혀내지 못했던 60여년전 한 가장의 억울에 죽음에 대해 법원이 국가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민사1부(박강회 지원장 겸 부장판사)는 7일 최모(81·여)씨 등 세 자매가 지난 6월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각각 506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해당 국가기구인 과거사 위원회가 진실규명이 어렵다고 덮어버린 특정사건에 대해 법원이 추가조사를 통해 첫 배상판결을 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증거부족과 소멸시효 등으로 배상을 받지 못해온 다른 과거사 사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씨의 불행한 사연은 6·25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씨의 전남 영암군 서호면 외가에 당시 영암경찰서 군서지서 소속 ‘이 순경’ 등 경찰관 2명이 찾아온 것. 최씨는 전쟁의 회오리에 휩싸인 고향 마을을 벗어나 다른 여동생 2명과 함께 외가에서 생활하다가 낯선 경찰관들에게 아버지가 끌려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린 외사촌 동생 가슴에 경찰관들이 총을 겨눈 것도 충격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연행된 아버지를 따라 군서지서에 간 최씨는 저녁밥을 전하기 위해 어머니, 동생(당시 7살)과 함께 아버지 면회를 신청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시 기억으로는 ‘주 주임’이라는 경찰관이 어린 자매를 딱하게 여기고 면회할 시간을 주려고 했지만 이 역시 허사였다. 그러다가 군서지서 취조실을 서성대던 오후 10시쯤 경찰관 2명이 아버지의 양팔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게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30분쯤 뒤 귀청을 찢는 세 발의 총성이 들렸고 다음달 새벽 할아버지, 큰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한 것이다.

하지만 최씨의 사연을 접수받은 과거사 위원회는 장기간 조사를 거쳐 2010년 6월 29일 “사건을 직접 목격한 참고인의 결정적 진술이 없다”며 “경찰의 불법적 공권력 행사에 따른 사망인지 불분명하다”는 ‘진실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최씨는 결국 지인과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6월 2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끝에 3년여만에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대법원이 제시한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소송의 소멸시효가 과거사 위원회의 최종 결정일로부터 3년으로 제한돼 있어 만약 하루만 더 지났어도 소송 접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씨 자매와 재판부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재판부는 최씨 자매의 진술 외에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경찰청에 경찰관 신분조회를 신청한 결과 최씨의 아버지가 숨졌다는 1950년 12월27일에 실제 ‘이 순경’과 ‘주 주임’이 군서지서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확인했다. 재판부는 최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을 토대로 과거사 위원회의 진상 규명 불능과 달리 국가배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아버지가 경찰에 연행돼 총살당했다는 원고 최씨의 주장이 믿을만하다며 숨진 아버지의 상속관계 등을 따져 세 자매에게 각각 5060만원씩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과거사 위원회가 진실 규명 불능으로 결정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추가 증거보강 등을 통해 배상판결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강회 목포지원장은 “과거사 위원회가 당시 최씨 아버지의 사망 경위에 대해 더 충실한 증거조사를 했거나 이에 기초해 적절한 판단을 했더라면 진실이 벌써 가려졌을 것”이라며 “과거사 위원회에서 진실 규명 불능 결정이 났더라도 소송을 통해 국가배상 등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장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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