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필리핀 타클로반 외곽 산호세에 살고 있는 20살의 시나 다제스는 한국에서 온 기자를 붙잡고 “제발 우리 이야기를 외부에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12일 아침 군인들의 차를 얻어 타고 가족들과 간신히 산호세를 빠져 나와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시청에 와서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조카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이들이 굶어 죽을까 걱정된다. 먹을 것이 없다”며 울먹였다.
다제스는 지난 금요일 새벽 엄청난 비와 바람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타클로반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닷가에서 살아왔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곧 집안까지 물이 닥쳤다. 무릎 높이까지 찼던 빗물은 금방 가슴까지 올라왔다. 2층으로 서둘러 올라가니, 지붕은 바람에 날려가고 언니들과 10여명의 조카들이 한데 모여 울고 있었다. 2층집까지 금방 비에 젖었다.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우리를 살려주세요.”
기독교인인 다제스는 비바람이 치는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길 건너편 콘크리트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로 와! 빨리 와야 살 수 있어!”
도로에는 빗물이 성난 강물처럼 넘쳐나고 있었다. 언니들과 조카를 끌어안고 빗물을 헤쳐 간신히 안전한 곳에 도달했다. 집에 있던 음식도 다 빗물에 쓸려 가버렸다.
다제스는 “가게에서 물건을 빼오는 게 나쁜 일인 줄은 알지만,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상점에 있던 식량을 가져왔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워했지만, 그것이 조카들을 살리기 위해 이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며칠 동안 산호세에서 꼼짝도 못하던 다제스의 가족은 5일만에 겨우 시내로 빠져나왔다. 당장 오늘 잘 곳도 없지만,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함께 거리를 치우고 친지들에게 연락하는 모습을 보며 조그만 위로를 얻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예비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선한 뜻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살려준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제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타클로반(필리핀)=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