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집권당 지방선거 압승… 인터넷 통제에 후폭풍 격결

터키 집권당 지방선거 압승… 인터넷 통제에 후폭풍 격결

기사승인 2014-03-31 23:32:00
[쿠키 지구촌] 터키 집권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대권가도에 탄력이 붙었다.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된 총리와 집권당은 정부 비판을 막기 위한 인터넷 통제를 강행하고도 다수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정국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총리의 정의개발당(AKP)은 30일(현지시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약 45%의 전국 득표율로 약 29%를 얻은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을 크게 앞섰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 득표율은 AKP가 선거를 앞두고 목표로 제시한 2009년 지방선거 때의 38.8%를 크게 웃돈다. 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2011년 총선 때의 49.8%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밤 수도 앙카라의 AKP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선거 승리를 선언했다.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은 때였지만 당시까지의 개표 상황만으로도 승리를 확신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선거는 에르도안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이 강했다. 지난해 여름의 전국적 반정부 시위와 총리에 대한 부패 의혹 제기 이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선거에서 질 경우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온갖 악재를 맞은 집권당의 승리는 상식적으로 볼 때 의아한 일이다. 지난해 12월 장관들의 아들과 국책은행장 등이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됐고, 지난 2월 말부터는 에르도안의 권력형 비리를 암시하는 도청 파일이 인터넷에 잇따라 폭로됐다. 이 파일은 에르도안이 아들과 거액의 비자금 은닉을 모의하거나 기업인에게 받기로 한 돈의 액수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최근 에르도안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9개월 만에 숨진 10대 소년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해 반정부 정서에 더욱 기름을 부었다.

에르도안이 이슬람주의 정당인 AKP를 앞세워 2003년 3월부터 지금까지 12년째 총리를 할 수 있었던 요인은 경제적 성과였다. 에르도안 취임 당시 3030억 달러였던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은 2012년 8172억 달러로 늘었다.

그동안 시민의 불만을 누적시킨 건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이다. 에르도안은 여성에게 얼굴을 가리는 히잡을 쓰게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과 주류 판매를 못하게 했다. 지난해 이스탄불의 공원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 방안은 결국 대규모 시위를 불렀다.

에르도안은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해소하기보다 억누르는 방식으로 맞서왔다. 반정부 시위가 거셌던 것도 정부의 강경진압 탓이 컸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정부 비판을 막겠다며 트위터와 유튜브를 차단했다.

이런 에르도안의 AKP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건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농민과 저소득계층으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반대파는 주로 대도시 주민이나 전문직 종사자로 알려져 있다.

에르도안이 올해 8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는 총리 연임을 3회까지로 제한한 당규를 고쳐 4연임에 나설 생각이었다. 원래는 대통령직을 노렸지만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선이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대권을 노린다면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의원내각제를 기본으로 하는 터키에서는 총리가 실권을 쥐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리하이 대학의 터키 전문가 헨리 바키 교수는 “터키는 지금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며 “(선거) 결과가 뭐든 간에 거대한 불안정이 예상된다”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다. 에르도안은 선거 승리 연설에서 정적들을 겨냥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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