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이 나선 첫 담배소송… 이길 확률은?

정부기관이 나선 첫 담배소송… 이길 확률은?

기사승인 2014-04-15 01:08:00
[쿠키 사회] 정부기관이 나선 국내 첫 담배소송이 첫발을 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9일 KT&G·필립모리스코리아·BAT코리아 등 국내 시장점유율 1~3위 담배제조·수입사를 상대로 53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필립모리스는 ‘말보로’, ‘버지니아슬림’, BAT는 ‘던힐’ 제조·판매사다.

◇정부의 첫 담배소송, 승소 확률은=손해배상의 취지는 흡연으로 암에 걸린 환자들을 위해 건보공단이 지불한 진료비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2001~2010년 폐암(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에 걸린 3484명 중 흡연 이력이 공적자료로 확인되는 환자들이 선별됐다. 537억원은 건보공단이 2003~2012년 이들의 암 치료를 위해 지불한 진료비 총액이다.

개인 암 환자들이 낸 담배소송은 지난 10일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흡연으로 인해 암에 걸렸다는 인과관계와 함께 담배회사의 불법행위가 입증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어서 건보소송 역시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안선영 고문 변호사는 “공단은 19년간 쌓은 의학적빅데이터와 세계보건기구(WHO) 자료, 담배회사의 내부고발 정보까지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출발부터 다른 소송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건보소송 vs 개인소송, 다른 점은=결정적 차이는 피고에 필립모리스·BAT 등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필립모리스·BAT 모두 해외 소송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폭로돼 패소하거나 거액의 합의금을 물어준 전력이 있다. 그동안 개인들이 전패한 국내 담배소송의 피고측 담배회사는 KT&G(한국담배인삼공사) 한 곳 뿐이었다.

필립모리스는 2006년 미국 연방정부와의 소송에서 패소할 당시 판결문을 통해 암모니아 등 첨가물을 통해 니코틴을 조작하고 유해성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BAT의 경우에는 미 주정부와 거액의 배상금에 합의하며 기밀문서 제공을 약속해 관련 자료가 전부 공개돼있다.

물론 외국계 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도 동일한 제조방법과 영업전략을 사용했다는 건 입증돼야 한다.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된 법무법인 남산의 정미화 변호사는 “다국적 담배회사가 제조법 마케팅 측면에서 글로벌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충분히 입증 가능하다”고 말했다.

◇KT&G, 자료 내놓을까=그간 KT&G 측은 소송 과정에서 “설탕 등 인체에 무해한 성분을 첨가물로 넣고 있다. 암모니아는 넣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암모니아 자체는 독성이 없지만 니코틴 흡수를 빠르게 해 중독성을 높이는 첨가물이다. 개인소송 과정에서도 국내 담배에 사용되는 첨가물의 범위는 논란이 됐지만 KT&G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미화 변호사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모두 넣은 첨가물을 KT&G만 넣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면 합당한 증거자료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담배 제조과정의 비밀을 폭로할 내부 고발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인과관계 입증, 공은 담배회사에=지난해 건보공단은 2003~2012년 흡연으로 인한 질환의 치료비 중 공단의 급여비 지출규모를 10조1273억원이라고 발표했다. 2011년 기준으로 한해 1조7000억원이다. 이번 소송가액이 피해액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37억원으로 정해진 이유는 인과관계 입증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2011년 서울고법 판결에 따르면 ‘30년 이상 흡연, 흡연력 20갑년(하루 1갑 이상 20년 흡연) 이상’인 경우에는 담배와 암의 인과관계를 포괄적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이 조건에 해당하는 환자들만 추린 이번 소송에서는 입증 책임이 원고 대신 피고측에 넘어간다. 피고인 담배회사가 ‘흡연이 원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거꾸로 설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황인호 기자 ymlee@kmib.co.kr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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