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27일 오후 진도 팽목항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세월호 침몰사고 12일째.
팽목항 한켠에 설치된 임시 신원확인소는 하루 종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전날 새벽 187번째 시신이 마지막으로 수습된 이후 하얀 천에 덮여 실려 온 사망자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 시신 2구가 팽목항으로 운구된 지 꼬박 하루가 넘었지만 선체 안에서도 선체 밖에서도 수습된 시신이 없다. 하지만 가족대책위 상황실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 설치된 신원확인소에는 두 눈이 빨갛게 충혈 된 채 목이 쉰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가 간간히 메아리쳤다.
“시신이라도 좋으니 물고기 밥이 되기 전에 한번만이라 안아보게 해달라고...제발.”
실종자의 신분이 사망자로 바뀌는 절망의 공간에서 가족들은 싸늘한 주검이라도 꼭 찾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교사로서 첫 수학여행길에 올랐다가 실종된 맏딸을 찾아 진도에 뒤늦게 내려온 산업통상자원부 해외투자과 남북경협팀장 전제구(53)씨는 “사망자 인양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다”며 눈물을 삼켰다. 아직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전씨의 딸은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먼저 입혀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
신원확인소 업무를 담당하는 해경 소속 송민웅 계장은 “침몰사고 초기 수습된 시신은 사망자의 신체적 특징을 육안으로 충분히 식별할 수 있었지만 열흘을 넘기면서 부패가 심해져 DNA 검사결과에 의존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소한 이틀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절차지만 그래야만 시신이 뒤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송 계장은 “수학여행 학생들이 세월호 안에서 게임의 벌칙으로 서로 옷을 바꿔 입었다고 들었다”며 “시신이라도 찾으면 다행이라는 가족들의 비참한 심정을 누가 짐작이라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오후 4시쯤 찌그러진 우산을 받쳐 들고 신원확인소를 힘겹게 찾은 어느 할머니는 “우리 손자 아직 안떠올랐냐”며 “손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죽어야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남자 시신은 왼쪽 천막으로, 여자 시신은 오른쪽 천막으로’.
신원확인소는 시신 수습이 크게 늘어난 지난 22일 오후 설치됐다. 생기발랄하던 고교생 자녀들이 번호가 매겨진 시신으로 돌아오는 곳이다.
자녀의 시신을 이 곳에서 마주한 부모들은 꽃다운 나이에 짧은 삶을 마감한 자녀들의 죽음이 슬퍼서 울고, 애타게 인양소식을 기다리던 다른 이들은 내 자녀가 아니어서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유족들이 기다림에 지쳐있다”며 “열흘 넘게 기다린 끝에 시신을 찾은 유족들의 얼굴을 보면 나도 몰래 눈물이 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울고 또 울고 있다.
팽목항은 평소 여객선을 기다리던 탑승객들이 다도해 경치를 둘러보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검은 제복의 해경들이 싸늘한 주검을 들고 올 때마다 하염없는 기다림과 뼈아픈 체념이 교차하는 통곡의 바다가 되고 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