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부패 심해져 DNA 검사 결과 의존해야”… 비참한 신원확인

“시신 부패 심해져 DNA 검사 결과 의존해야”… 비참한 신원확인

기사승인 2014-04-28 11:24:01

“시신이라도 좋으니 제발 한 번만 안아보게 해달라”

[쿠키 사회] 27일 오후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세월호 침몰 사고 12일째인 이날 팽목항 한켠에 설치된 임시 신원확인소는 하루 종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여성 시신 2구가 하얀 천에 덮여 186번과 187번째로 팽목항에 실려 온 것은 26일 새벽 2시쯤. 이로부터 꼬박 36시간 만인 이날 오후 2시쯤 남학생 시신 1구가 인양될 때까지 팽목항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추가 인양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거센 사고 해역의 풍랑만큼 가슴을 후비는 소식에 이들은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팽목항 가족대책위 상황실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 설치된 신원확인소에는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목이 쉰 일부 가족들의 절규가 간간이 터져나왔다.

“살려 달라는 게 아니라고. 시신이라도 좋으니 한번만이라 안아보게 해 달라고. 제발.”

실종자의 신분이 사망자로 바뀌는 절망의 공간에서 가족들은 싸늘한 주검이라도 꼭 찾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습기를 머금은 포르말린 냄새는 신원확인소 주위를 맴돌았다.

교사로서 첫 수학여행길에 올랐다가 실종된 맏딸을 찾아 진도에 뒤늦게 내려온 산업통상자원부 해외투자과 남북경협팀장 전제구(53)씨는 “사망자 인양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며 눈물을 삼켰다. 아직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전씨의 딸은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먼저 입혀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신원확인 업무를 담당하는 해경 소속 송모 계장은 “침몰 사고 초기 수습된 시신은 사망자의 신체적 특징을 육안으로 충분히 식별할 수 있었지만 열흘을 넘기면서 부패가 심해져 DNA 검사 결과에 의존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이틀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절차지만 그래야만 시신이 뒤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후 4시쯤 찌그러진 우산을 받쳐 들고 신원확인소를 찾은 어느 할머니는 “우리 손자 아직 안 떠올랐느냐”며 “손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죽어야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남자 시신과 여자 시신을 구분한 신원확인소는 지난 22일 오후 설치됐다.

금쪽같은 자녀의 시신을 확인한 유족들은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일련번호가 매겨진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과 딸의 얼굴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오열했다.

난데없이 장례를 치르게 된 부모들은 꽃다운 나이에 짧은 삶을 마감한 자녀의 죽음이 슬퍼서 울었다. 인양 소식을 기다리던 다른 이들은 애타게 찾던 내 자녀가 아니어서 또 눈물을 훔쳤다.

자원봉사자들은 “유족들이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있다”며 “열흘 넘게 기다린 끝에 시신을 찾은 유족들이 그나마 안심하는 것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신을 실은 배가 팽목항에 들어오면 제발 살아 돌아오길 고대하던 많은 가족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다가 허무한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 검은 제복의 해경들이 싸늘한 주검을 들고 천막에 도착할 때마다 팽목항 신원확인소는 슬픈 해후와 속절없는 기다림이 매번 엇갈리고 있었다.

진도=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김영균 기자 swjang@kmib.co.kr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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