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은행·보험·카드사·증권사·저축은행 등 17개사의 전국 3000여개 지점에는 ‘불량’이라는 붉은색의 안내문이 붙었다. 지난달 금감원은 85개사의 민원발생과 처리 등에 대한 평가 후 등급을 매겨 발표했다. 이후 최하위등급(5등급)을 받은 금융사가 홈페이지 초기화면과 영업점 출입구에 3개월간 해당 등급을 표시해놓도록 지시했다. 일종의 ‘주홍글씨’인 셈이다.
5등급을 받은 한 은행 영업점 입구에는 관련 내용이 담긴 A4용지 크기의 안내문이 붙었다. 여기엔 ‘2013년도 금감원 민원발생평가 결과’란 검은색 작은 글씨 아래 폰트 55로 ‘5등급(불량)’이란 빨간 글씨가 써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못 보고 지나쳤다. 출입구가 여러 개인데 한 쪽 문에만 부착돼있었고, 옆에 붙어 있는 다른 상품 홍보물들의 크기가 훨씬 커 눈길을 끌지 못하는 듯 했다. 인근의 다른 은행의 경우도 비슷했다. 가끔 안내문을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특별한 설명이 없어 한번 쓱 보고 지나치는 게 전부였다. 그렇지만 ‘불량’이라는 단어에는 민감해했다.
홈페이지 등급 표시의 경우 주홍글씨 효과가 더 크다. 접속하자마자 메인화면에 각자가 받은 등급이 표시돼있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하위등급을 받은 회사의 경우 영업점 안내문과 같이 붉은색의 5등급 표시를 하고 있다.
거래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등급을 확인한 이모씨는 “이것 때문에 거래은행을 옮기거나 하진 않겠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불량등급’을 확인한 김모씨 역시 “정보유출 사태로 금융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는데 이걸 보고나니 ‘진짜 옮겨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금융사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이번에 최하위등급을 받은 금융사 관계자는 “등급을 붙여둔다고 해서 거래가 줄거나 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고객들이 민원발생평가 등급을 회사 자체의 등급으로 오해해 이미지가 실추될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민원관리를 잘못한 것은 우리 잘못이기 때문에 영업점에서 먼저 고객에게 사과를 드리고 등급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평가에서 5등급을 받은 금융사는 국민·농협·한국SC은행, 롯데·신한카드, 알리안츠·에이스·우리아비바·ING·PCA생명, 롯데·AIC·에이스손해보험, ACE화재, 동부·동양증권, 친애·현대저축은행 등이다.
금감원은 2006년부터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민원예방노력을 유도하고 금융소비자의 권익증진과 소비자주권의 실현을 위해 매년 금융회사에 대한 민원발생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등급은 1등급(우수), 2등급(양호), 3등급(보통), 4등급(미흡), 5등급(불량) 등 5단계로 이뤄져 있다. 특히 이번부터는 소비자보호를 강력하게 끌어내기 위해 등급을 게재하도록 함으로써 해당 금융사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네임 앤드 셰임(Name and Shame·비리명단발표)’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