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장윤형 기자] ‘직업성 암(癌)’과 백혈병

[현장에서/장윤형 기자] ‘직업성 암(癌)’과 백혈병

기사승인 2014-05-19 14:57:00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린 근로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합당한 보상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반도체사업장의 백혈병 문제가 해결되는 쪽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협상 상대인 반올림(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측도 일단 환영하고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았다. 반도체 제조공정과정과 백혈병 간의 인과관계 인정 여부다.

특히 ‘직업성 암’은 전문가들도 선뜻 인과관계에 대한 명확한 코멘트를 주기가 쉽지 않다. 과학적인 입증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며, 또 다른 이유는 특정기업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는 산재인정을 밝히는 데 따른 부담이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장에서 일한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철저한 보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백혈병이 산업재해인지 여부, 즉 직업과 백혈병과의 연계성인 ‘직업성 암’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 지난 14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중이거나 사망한 가족에게 합당을 보상을 할 것이며 성심성의껏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반도체 제조공정과 백혈병간의 인과관계 인정 여부에 대해서는 ‘그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이에 의료계 현장에서 백혈병 환자들을 돌보는 전문 의료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실제 산업장에서 일하다 직업성 암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의료진에게 직업과 암의 연계성에 대해 진단서를 받기도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 근로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반도체사업장에서 근무를 하다 난치병에 걸린 문제가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이유는 이러한 직업성 암에 대한 입증관계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의사들은 ‘직업과 암의 연계성’에 대한 입증관계를 밝히는 데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이 백혈병과 산업장 환경의 인과관계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을 때, 일부 의료진들은 이러한 진단에 대해 답을 피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다. 더불어 의료진들이 작업장 환경과 암과의 인과관계에 대해 밝히는 데 꺼려한다는 것도 암암리에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 공정과 백혈병 발병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인과관계를 밝힌 의사들도 있다. 기자가 만난 한 의사는 “반도체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반도체를 세척하는 데 사용하는 유기 용제가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다”며 “해외 한 논문에서는 반도체작업장에서 반도체를 세척하는데 쓰이는 유기 용제 등의 화학물질에 근로자들이 일정시간 이상 다량으로 노출될 경우 백혈병 등의 암 발병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암 발병이 화학물질 노출 후 수년이 지나 발생해서 이 둘의 인과관계를 즉각적으로 밝히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이 백혈병 산업재해 인정한 사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 지난 2000년에 발간된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에 실린 논문에서는 반도체 산업장에서 사용되는 비소 등의 유해금속이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아직 명확한 입증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직업환경보건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이라는 직업병 및 산업보건과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는 국제학술지에는 삼성전자 백혈병 사례가 다뤄진 적도 있다. 이 학술지에 실린 ‘한국 반도체공장 근로자의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Leukemia and non-Hodgkin lymphoma in semiconductor industry workers in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에는 삼성전자 반도체산업장의 노동환경과 직업병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논문의 저자에는 김현주 단국대 의대 교수, 임신예 경희의료원 교수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부 주도에 의한 ‘직업과 관련한 암의 역학조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체 암 발생이나 암 사망 중 직업과 관련된 암의 추정은 암 통계 구축과 역학적 연구가 활발한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만 하고 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사망률은 전체 암 사망의 약 9.7%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는 전체 암 사망의 4.9%(남성 암 사망의 8%, 여성 암 사망의 1.5%), 미국은 전체 암 사망의 약 2.4~4.8% 가 직업성 암 사망이라고 추정했다.

기업의 사업장 관리 책임도 문제지만, 근로자 작업 환경의 문제점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이를 수수방관한 정부의 탓은 더욱 큰 문제다. 앞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까.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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