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이슈추적] 이경호 제약협회장 “의약주권 지키려면 낡은 약가제도 타파해야”

[K-이슈추적] 이경호 제약협회장 “의약주권 지키려면 낡은 약가제도 타파해야”

기사승인 2014-05-28 11:16:00


[K-이슈추적] ‘한국의 경직된 약가제도 문제점’ 기사 연재 순서

① 한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② 제약산업 옥죄는 약가정책은?

③ [인터뷰] 한국제약협회 이경호 회장

④ [인터뷰]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김성호 전무

⑤ [현장에서/장윤형 기자]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려면

[쿠키 건강] “제약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닙니다. 쌀도 나라의 중요한 식량으로 여겨왔듯이 의약품도 마찬가지죠. 이제는 ‘국산약’의 가치를 인정해 ‘의약주권’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약가제도를 개선하고 신약개발을 적극 도울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경호(사진) 한국제약협회장은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협회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 회장은 보건복지부 차관 출신으로 2010년 협회의 20대 회장으로 추대된 이래, 시장형 실거래가제와 일괄 약가인하 등 제약산업을 주요 정책들을 겪으며 5년째 협회를 이끌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R&D를 통한 신약개발, 리베이트 근절을 통한 윤리경영, 글로벌 진출의 3대 과제다. 이를 위해 제약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경호 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붕괴하면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연쇄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고용 감축과 R&D 투자 축소 등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우려는 현실화됐다. 국내 제약업계는 정부의 연쇄적인 약가인하 조치로 약품비 청구실적이 두자리수까지 감소했다. 한국제약협회가 발표한 ‘약가인하 이후 제약산업의 변화’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68개 상장 제약기업들의 2012년 약품비 청구액이 5조2914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6.8% 감소했다.

그는 ‘국산 신약’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제약산업을 옥죄는 불합리한 약가정책이 철폐돼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년대비 매출이 많이 증가한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깎는‘사용량 약가 연동제’ 다. 이 회장은 “경쟁력 있는 제품이 보다 저렴하게 많이 팔릴수록 가격이 깎이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해 대형 국산품목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며 “보령제약 카나브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출 주도 의약품 등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두는 등의 제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남아 국가들 중 국내 제약산업 기반이 무너져 다국적 제약사와 수입의약품에 국민건강권을 의존하는 사례는 많다. 2010년을 기준으로 아시아 국가의 다국적 제약사 비중은 베트남 85%, 태국 75%, 싱가포르 97%, 대만 74% 등이었다. 이 회장은 “자국의 의약품 개발생산 역량은 사회안전망의 기본”이라며 “국내 제약산업이 무너지면 결과적으로 해외에서 수입되는 의약품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고 이에 따른 약가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베이트 관행은 우리 제약산업의 가장 큰 문제다. 그는 이러한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자정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국제기준에 맞는 윤리헌장을 제정하는 한편 제약기업 윤리경영 실천지침서도 발간 배포할 예정이다. 또 현행 공정경쟁규약도 철저한 심의 및 준수를 통해 업계의 자율적인 정화운동이 뿌리내리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7월 1일부터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실시된다. 국회는 지난 1월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된 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최대 1년까지 일시정지 시키고, 같은 약이 2회 이상 리베이트로 적발되면 건강보험 급여목록에서 삭제하는 이른바 투아웃제 법안을 의결했다.

이 회장은 "리베이트와 단절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으며 윤리기업 인증은 제약산업 글로벌화의 필수조건"이라며 "국내 제약기업들이 윤리경영을 강화해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국제적 기업으로 커가는 것을 지원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제약회사들이 백화점식 제네릭(복제의약품) 의약품만 양산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제약기업들은 제네릭의약품 과다경쟁에 내몰려 있다. 이 회장은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제약산업에 있어 후발주자”라면서 “일본도 제약산업을 시작했을 때는 제네릭을 통해 기반을 쌓다보니 각종 리베이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한국도 제네릭을 시작으로 했으나 이제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쌓았다. 순리대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제약산업은 선진국 수준의 생산 인프라 구축과 좋은 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는 세계 10번째 신약개발국으로 해마다 평균 2~3개의 신약을 개발하는 등 연구개발 경쟁력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1000억원을 넘은 대형품목은 2개의 품목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세계적인 글로벌 신약이 없다. 세계적 신약이 한국에서 나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경호 회장은 “대한민국 제약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제는 세계적인 신약이 나올 수 있을만큼의 기술력과 우수인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정부에서 제약가치를 인정하고 의약품 가격을 현실에 맞게 책정해야 한다”며 “국내제약기업이 개발원가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제도 개선이 이뤄져 회사가 수익성이 개선되면 이것이 R&D 투자비로 이어져 신약개발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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