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겸 소설가 이상(1910~1937)의 러브레터가 공개됐다.
이상이 25세이던 1935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는 원고지 3장 분량이다. 편지에는 작가 최정희(1912~1990)에게 바치는 절절한 고백이 담겨있다. 최정희는 당시 23세 이혼녀로 시인 백석(1912~1996)에게도 구애를 받았다.
이상의 편지는 24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소개가 되며 네티즌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한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에 있던 때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이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희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길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다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희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야공(夜空)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든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해서 쓰기로 한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 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편지를 공개한 권영민(66) 단국대 석좌교수는 글씨체와 서명을 미루어 볼 때 이상의 편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감동했다. “편지가 마치 시 같다” “내용이 너무 예쁘다” “절절한 마음이 시공을 뛰어넘어 와 닿는다” “저런 러브레터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최정희가 부럽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상은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오감도’ ‘꽃나무’ ‘거울’ ‘날개’ 등의 작품을 남기고 1937년 일본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