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고역은 자기소개서 작성입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자기소개서를 갈수록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자소서는 당락을 결정하는데 핵심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소서 작성 항목이 매우 많은데다 해당분야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 작성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소서 하나 작성하는데 며칠씩 걸리기도 한답니다. 특히 빠지지 않는 항목 중 하나가 ‘지원 동기’인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정답은 취업을 위해서인데 알면서 왜 묻나”라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죠. 그래서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는 비아냥도 있더군요.
하지만 응시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지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자소서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는 거죠. 사실 쿠키뉴스를 운영하는 저도 직원을 뽑을 때 자소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많은 참고를 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국정감사에서는 곽성문 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장의 자소서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곽 사장이 코바코 사장직에 응모하면서 자소서에 업무적 역량보다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 대선 당시 박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사실을 강조했고, 또 “이번에 공직을 맡게 되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까지 기술했답니다.
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된 자니윤씨도 비슷한 내용의 자소서를 제출했었죠. 자신이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사실과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들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어떤 자리에 응모를 한 것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고,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내용을 자소서에 담았을 뿐입니다. 잘못이라면 그런 자소서에 많은 점수를 주고 그들을 채용한 임명권자에게 있는 것 아닐까요.
낙하산 인사는 이번 정부만의 폐해가 아니고, 과거 역대정부 어느 때나 있어왔습니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중심제 폐단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대통령중심제가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만 바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인들 호의호식시키려고 선거 때마다 그렇게 투표장을 달려가는 게 아닌가 말이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죠. 국민들이 대접받는 것은 투표 당일뿐이라고.
기업 경영에서 CEO의 역량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부가 공기업 사장에 비전문가를 임명하고, 그 공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다그치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자칫 그 책임을 CEO 임명에 전혀 관여하지 못한 종업원들이 떠안기가 일쑤죠.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 장성출신들이 국가기관의 수장을 맡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특징을 살펴보면 대개 국세청장이나 건설부장관 등 비교적 전문성을 덜 필요로 하는 자리였습니다.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 장관에 군 출신을 기용하지 않은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죠.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고 할까요.
낙하산 인사의 문제는 그것이 국민을 위한 인사가 아니라 정치인과 정권을 위한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새정치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것들을 없애는 게 아닐까요.
대선 때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정권 출범 후 기관장이나 공기업 사장에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습니다. 국민들로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인데, 역시 진척이 되지 않더군요. 여야 모두 한통속으로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일까요?
변재운 쿠키뉴스 대표 jwbyu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