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정미 한솔교육연구원 원장
처음 만났을 때 그 엄마의 얼굴은 매우 경직돼 있었다. 아이의 발달에 대해 상담을 받고 해결책을 찾고 싶어 한다기보다 굳게 무장하고 전투에라도 나갈 태세였다. “어머님, 지금 싸우러 가는 사람 같아요”라고 하자 그녀는 뜻밖에도 “네, 맞아요. 전 지금 아이와 전투를 하고 있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이기셨나요?”라고 되묻자 “네, 이제 이기려고 해요”라고 답했다.
이 이야기를 보고 ‘아, 이제야 저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지 깨달았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상담 다음 주, 다시 만난 그녀의 표정이 한층 밝았다. “전보다 얼굴이 편해 보이는데 어떠셨어요?”라고 묻자 엄마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생각보다 쉬웠어요. 지금까지 저는 늘 아이에게 뭔가 하라고 시키고 아이는 하지 않으려 해서 실랑이만 했죠. 화가 나 소리를 지르고 윽박질러야 아이가 말을 들었어요. 저는 아이들을 그렇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야 배운다고…. 하지만 매번 그 고생을 하자니 그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어요. 그런데 아이의 행동에 반응해주면서 제가 맞춰주니까 참 쉬운 거예요.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되니까 편했고요. 아이도 자기 행동에 엄마가 반응해 주는 것이 재미있는지 절 보고 웃어줬어요. 아이와 마주보고 웃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많은 부모는 전문가를 만나면 질문을 쏟아낸다.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의 문제 행동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아이가 산만한데 어떻게 하면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요?”등의 내용이다. 아이를 내 입맛에 맞춰 쉽게 이끌 수 있는, ‘한 번에 끝나는’해결책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가 ‘A일 때는 B로 해결하세요’라는 정답을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위해서’, ‘아이 중심으로’라는 말로 포장한다. 사실은 부모인 내가 원하는 무엇을 아이에게 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아이들은 가르친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배운다는 것. 그리고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바로 그 아이의 부모라는 점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 중 아이의 행동을 가장 많이 관찰한 사람도 부모고, 이런저런 방법을 써가며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도 부모다. 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조언을 구하지만, 설사 전문가가 좋은 방법을 알려준다 해도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내 아이에게 맞게 방법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부모 교육 강의를 들을 때 깨닫는 건 많은데 정작 현실에서 변하는 건 없어 회의가 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부모로서 ‘내가 무엇을 할까?’보다 ‘우리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시작이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해줄 때 아이는 커나간다.
전통적 육아 교육에서는 주로 ‘아이가 이렇게 하게 하려면 이렇게 가르치세요’를 강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해도 억지로 시키고 주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부모들이 더 잘 안다. 반면 아이가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깃털을 가볍게 날리는 것만큼이나 수월하다.
어찌 보면 우리는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 속에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자녀와의 씨름을 반복했는지 되돌아본다면 아마 놀랄 것이다.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1년, 7년, 혹은 10년간 ‘이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와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해 왔을 것이다.
현실을 보자. 지금 아이가 부모의 요구대로 변해있는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 부모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아이, 부모를 잘 따르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면 먼저 ‘반응적’부모가 되자. 반응적 부모는 아이를 끌고 가지 않고, 아이의 능력을 믿고 아이가 스스로 계획한 것을 따른다. 그래야 신뢰가 싹트고 그 신뢰는 관계를 깊게 만든다. 이런 관계 속에서 아이는 부모의 요구를 믿으며 부모 옆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즐겁게 배울 수 있다.
먼저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자. 아이에게 우선권을 양보하자. 그러면 아이는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그 다음, 아이의 능력을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