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가족들의 하루는 24시, 마음의 고통은 24년

소아암 가족들의 하루는 24시, 마음의 고통은 24년

기사승인 2015-04-25 16:44:55
"우리 아이가 소아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 암은 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평범했던 가정에 커다란 변화가 왔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못할 거예요.

아이가 소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부모들은 ""내 아이의 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소아암 진단을 받은 아이와 그 가족들은 암 판정을 받은 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 시·공간으로 들어간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일상은 아이가 아프게 된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소아암은 소아에게 생기는 악성종양을 말하며, 크게 혈액암과 고형종양으로 나눌 수 있다. 혈액암은 몸속의 혈액세포에 암이 생겨 증식을 하는 질환으로 백혈병이 포함돼 있으며, 고형종양은 몸속의 세포 중 일부가 악성변화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뇌종양 등이 있다. 소아암으로 진단을 받게 되면 비싼 항암치료비, 검사비 등 모든 치료비용은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남는다. 정부와 소아암재단에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일부 지원을 해주지만, 이것도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다.

기자는 소아암을 겪는 부모들을 만나 치료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왔는지 들어봤다.

◇소아암 겪는 환우와 가족, 고통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누구나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중증의 병을 앓고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암에 걸리는 것과 다르게, 소아암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긴다. 특히 소아암의 경우는 대부분 원인이 분명하지 않아서, 부모들은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자책을 하게 된다. 혹시 유전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임신을 했을 당시 무엇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등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탓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잘못도 부모들에게는 없다.

""한국 정서상,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편견이 있어 누구에게도 어려움을 하소연할 수 없어요. 그래서 가족끼리 묵묵히 고통을 감당하려고 노력합니다.""

소아암을 겪는 10세 아이를 둔 한 부모는 ""자식이 아프다고 해도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꺼려하는 게 일반적인 정서""라며 ""사람들이 아이가 아프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소아암 환우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측량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숫자로 나타날 것이다. 더불어 치료 과정에서 오는 그들의 경제적, 심리적인 부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서울대병원 소아암 병동에서 현재 멘토로 활동 중인 주승남씨. 주씨 역시 아이가 급성림프성백혈병으로 진단을 받은 이후, 오랜 시간 치료 과정을 겪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주씨는 ""아이에게 암이 발병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암은 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겼다""며 ""아이가 아프고 난 뒤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늦둥이 막내가 태어났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일 때인데, 코피가 나기에 몸이 허약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죠. 이후 몸에 멍울이 생겼는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동네 병원을 찾아갔죠. 그랬더니 의사가 혈액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옮겨서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어요."" 이후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급성림프성백혈병'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주씨는 눈물을 보였다. 주씨는 ""암이라고 하면 죽을병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고 말했다. 주씨는 진단받은 날,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진료실을 나와 비상구 계단에 앉아 남편에게 전화를 하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당시 병원의 의사는 ""급성백혈병이기 때문에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치료를 꾸준히 받아 완치 수준에 도달했다. 주씨는 자신의 아이가 아픈 것을 계기로, 신규 환자들을 대상으로 멘토 역할을 자청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자식이 암 판정을 받게 되면 부모들은 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진다.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멘토인 주씨는 충격을 받은 부모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치료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을 소상히 알려, 그들과 공감을 나눈다. ""나도 그런 일을 겪어 봐서 알아요. 하지만 원망을 하기 이전에 우선 아이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어요. 부모가 정신을 바짝 차리면 아이는 더 강하게 병을 이겨낼 수 있어요. 힘을 내세요.""

소아암 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아이의 아픔으로 인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주씨는 ""아이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스트레스가 극심하다""며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소아암 병동의 가족들은 심리적 고통뿐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많다. 항암치료에 들어가는 비용 중 일부는 보험급여가 되지 않아 본인 부담이 크다. 세부 검사 항목 중에서 반드시 필요한 검사이지만 1년에 1∼2번만 보험이 적용되고, 추가로 검사할 경우에는 본인부담이 100%인 경우도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인근에 집을 따로 구해야만 한다. 특히 장기입원 환자들의 경우 가세가 기울기도 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돈을 벌어야 치료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모두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돈도 벌기 어렵고, 아이를 돌보는 것도 어려운 악순환이 지속된다. 한 부모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아픈 아이들을 위해서 각종 검사비용이나 항암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보장성을 확대해 주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아픈 아이가 있으면 아프지 않은 다른 형제들 역시 고통을 겪는다. 4살, 10개월 두 자녀를 둔 한 아버지는 ""큰딸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 동안 태어난 지 10개월도 안 된 둘째를 장모님께 맡겨야 했다""며 ""젖도 안 뗀 아기를 보내려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첫째 치료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보러 시골에 갔더니 아기의 혈색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데려와서 지금은 둘째와 첫째를 같이 데리고 병원에 다닌다.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아프지 않은 다른 자녀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여기기도 해요. 그들도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 돼요."" 주씨는 아픈 아이와 더불어, 아프지 않은 형제, 자매도 18세 미만이라면 돌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아암 갈수록 증가세,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 쏠림 현상 여전=소아암으로 고통받는 가정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소아암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2010년에 비해 모든 연령구간에서 증가했다. 그중 10∼14세 구간이 전체 진료인원의 31.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15∼17세 28.9%, 5∼9세 22.1%, 5세 미만 17.5% 순으로 높았다.

특히 소아암은 '백혈병' 비중이 가장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간(2010∼2014년)의 소아암에 대한 심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진료인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병은 백혈병으로 3484명이 진료를 받아 전체의 22.1%를 차지했다. 이어 '뇌 및 중추신경계' 11%, '비호지킨 림프종' 10% 순으로 높았다. 비호지킨 림프종은 혈액암의 일종이다.

다만 소아암은 치료만 잘하면 완치될 확률이 성인에 비해 높은 편이다. 때문에 이들이 사회로 복귀할 때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종진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 종양혈액과 교수는 ""소아암 환자의 완치율이 70∼80%까지 높아졌고 완치 후 생존기간이 60∼70년에 이르는 만큼 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아암은 조기에 치료만 잘 해도 완치 확률이 높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소아암 가족들은 치료비 부담으로 고통을 받는다. 보건복지부는 암환자 의료비지원사업을 통해 최저생계비 300% 이하(4인 가족 기준 500만4987원 이하), 재산이 약 2억8200만원인 경우를 모두 충족하면 백혈병은 1년에 3000만원까지, 고형암의 경우 1년에 2000만원(조혈모세포 대상자는 1000만원 추가지원)의 혜택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는 가족은 많지 않다. 재산이 없더라도 4인 가족 월 소득이 약 500만원 이상인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부모는 ""소득이 500만원 이상이 되면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원을 받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정부에서 보험급여가 되지 않는 치료비까지 포함하면 월 소득 500만원을 갖고도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

더 큰 문제는 소아암 병동의 대형병원 쏠림현상, 그리고 어린이병동의 병실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에 전체 소아암 환자의 80%가 입원해 있다. 한 부모는 ""병실이 너무 부족하고 의료진도 부족하다""며 ""만약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 오기라도 하면 줄을 서서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감기 등 경증 환자들도 대형병원으로 많이 몰려, 정작 치료가 시급한 아이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암환자들이 항암제 치료를 받기 위해 찾는 낮병동에서도 눈으로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중증의 소아암 환자들이 병실이 부족해 앉아서 주사를 맞는다. 한 부모는 ""우리나라는 잘 사는데 병실의 현실은 왜 이렇게 비참한지 모르겠다""며 ""정부에서 병상수를 늘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부모들은 소아암 아이들을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아암은 평범한 누군가에게도 충분히 찾아올 수 있는 병입니다. 나의 이웃의 일이자, 내 가족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해 줘야 해요. 더불어 대통령, 정치인, 언론인 등 모두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봐 주시고 힘써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아암 병동의 하루는 24시간이지만, 그들의 마음만큼은 하루가 24년과도 같다. 오늘도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병동에서 어려운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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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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