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13일 대국민 담화를 위해 청와대 춘추관에 입장한 박근혜 대통령의 옷 색깔만 보고도 SNS는 뭔가 주문이 많겠다고 직감한 분위기였습니다. 실제 박 대통령은 대북 경고와 경제 위기 등 강한 메시지를 강조할 때 붉은색 재킷을 입어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31분 동안 진행된 이날 담화에서 △북한 4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 △경제 위기 △국회 비판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대북 강력제재 방침은 단어 사용으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2년 전 ‘통일 대박’ 메시지는 사라지고 ‘통일’ ‘대화’ ‘교류’ 단어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선 강력 대응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를 언급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할 것”이라며 사드 한국 배치에 민감해하는 중국을 향해선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고 밝혔습니다.
대중 메시지는 “중국 정부가 한반도 긴장 상황을 더욱 악화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로 이어졌습니다. “중국은 그동안 누차에 걸쳐 북핵 불용 의지를 공언해 왔다”며 “강력한 의지가 실제 필요한 조치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5번째, 6번째 핵실험도 막을 수 없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이 담보될 수 없다는 점을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경제’라는 단어는 34차례나 언급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상황”이라며 정치권에 테러방지법은 물론 경제활성화법 및 노동개혁법안의 1월 임시국회 처리를 촉구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개혁 5법 중 기간제법을 뺀 나머지 4개 법안이라도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작심한 듯 “이번에도 통과시켜주지 않고 계속 방치한다면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는 민의의 전당이 아닌 개인 정치를 추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쟁점법안 처리지연에 따른 답답한 기색도 그대로 표출됐습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관련이나 규제완화 질문이 나오자 “어휴” “지금 같은 국회에서 어느 세월에 되겠나”라며 잇따라 한숨을 쉬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습니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선 과거 폭력이 난무하던 국회를 ‘동물국회’로, 법안 처리가 되지 않는 19대 국회는 ‘식물국회’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말 일본과 합의를 이뤘지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이 있어 100% 우리가 만족하게 할 수는 없었다”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최대한 성의를 갖고 최상의 것을 받아내 합의가 되도록 노력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야권을 겨냥해 “결과를 놓고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정작 자신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문제해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무효화를 주장하고 정치적 공격 빌미로 삼는 건 참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에는 “한·일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내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부가 소녀상을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자꾸 이상하게 왜곡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없는 문제를 자꾸 일으키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직접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상처가 아물면서 마음에 치유가 되는 과정에서 뵐 기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담화를 두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반응이 크게 엇갈렸습니다. 보혁으로 나눠져 날선 공방이 오갔습니다. ‘문제 의식에 공감한다’ ‘강력한 대북 메시지 마음에 든다’ 등 호평도 많았지만, “욕을 먹어도, 매일 잠을 자지 못해도” “제가 머리가 좋아서 기억을 하지, 머리 나쁘면 기억도 못해요” “(진실한) 사람들이 총선에서 당선돼야 한다”는 발언에는 십자포화가 쏟아졌습니다. 기자회견 사전에 질문 순서와 내용이 정해져 있었다는 주장은 이번에도 SNS에서 반복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자신의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을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비교하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 옆 자리를 비워둔 것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강력한 총기 거래 규제 방안을 발표하며 눈물을 흘린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자리를 비웠습니다. 인터넷에선 박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더 강조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