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실소만 유발한 ‘본분 금메달’, KBS는 공영방송의 본분이나 지키세요

[친절한 쿡기자] 실소만 유발한 ‘본분 금메달’, KBS는 공영방송의 본분이나 지키세요

기사승인 2016-02-12 00:05:55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울 때도 못생기면 안 됩니다.” 개그맨 김준현의 말이었습니다. 벌레를 보고 놀란 걸그룹 헬로비너스 나라는 놀라는 표정이 가장 예뻤다며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나라는 눈물을 글썽였고, 저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라의 표정은 카메라로 클로즈업됐죠.

지난 10일 방송된 KBS2 ‘본분 금메달’은 그야말로 당황스러움을 넘어 기가 막힌 방송이었습니다. 걸그룹 멤버 14명을 데리고 시작한 이 방송은 ‘무허가 테스트’라는 콘셉트 아래 아이돌들을 정신적 폭력과 야만의 끝으로 내몰았죠. 섹시 댄스라는 미명 하에 제작진은 아이돌들을 건물 옥상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건 아이돌들의 매력 발산이 아닌 몸무게 공개였죠. 섹시 댄스를 추게 한 무대 자체가 체력 테스트 도구가 아닌 몸무게 측정 도구였던 겁니다.

더불어 제작진이 공개한 것은 아이돌들의 사전 몸무게 기재 정보였습니다. 체력 테스트가 아니라 정직 테스트라며 제작진은 사전에 참가 멤버들이 기재한 자신의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를 적나라하게 비교했습니다. 기재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가 가장 차이가 없는 EXID 하니에게는 “아이돌의 본분 중 하나인 정직성이 우수하다”며 1위를 수여했습니다. 나머지 걸그룹 멤버들은 졸지에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됐습니다.

이외에도 상식 테스트라며 벌레 모형을 출연자에게 기습적으로 붙였습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걸그룹 멤버들은 식겁했죠. 그 중에는 울음을 터트리는 멤버도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놀라는 멤버들의 얼굴을 그대로 클로즈업하고, 슬로우 모션으로 비췄습니다. 방송 분량의 대부분이 아이돌들의 일그러진 얼굴로 채워졌을 정도이니 말 다 했습니다. 예쁜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랄 소녀들의 찡그린 표정을 보며 진행으로 발탁된 개그맨 전현무와 김준현, 김구라는 “이미지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미명 하에 내내 이죽거렸습니다. 일련의 과정들은 정신적 폭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본분 금메달’이 내세운 아이돌의 본분은 예쁜 얼굴과 애교,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지어야 하는 상냥함과 정직성이라고 합니다. 몸무게를 숨기지 않는 정직성이 아이돌의 본분이라면, ‘본분 금메달’에게 예능의 본분은 무엇인지 되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예능의 본분은 웃음이죠. ‘본분 금메달’의 제작진은 실소나 비웃음도 웃음의 영역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더욱이 ‘본분 금메달’은 KBS에서 제작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교양과 공정함, 신뢰감을 줘도 모자랄 공영방송에서 이렇게 가학적이고 비윤리적 관념을 강요하는 방송을 제작해 방영해도 되는 것일까요. 방송사의 본분은 무엇일까요.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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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 기자 기자
rickonbge@kmib.co.kr
이은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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