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간 밖으로’

[신간] ‘시간 밖으로’

기사승인 2016-04-15 14:50:55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이야기는 음식 냄새가 따뜻하게 배어 있는 부엌에서 시작된다. 갑자기 남자가 접시를 불쑥 밀어내며 일어선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남자는 불쑥 죽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말한다.

“- 어쩌면 아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 그렇지 않아. 오 년이 지났으니 아직까지 있지 않을 거야. 없을 거야.
- 우리가 왜 자기를 그렇게 금방 포기해버렸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지도 몰라. 우리가 통보를 받자마자…….
- 날 봐. 내 눈을 봐. 당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아? 내가 안 보여? 여기에는 당신이랑 나, 둘이 있어. 여긴 우리 집이야. 우리 부엌이고. 이리 와서 앉아. 내가 수프를 좀 가져다줄게.” (p.7)

자식의 때 이른 죽음으로 삶이 뿌리째 뽑혀버린 부모들의 모습을 다룬 ‘시간 밖으로’는 형식적으로 분류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대화나 독백으로 이루어진 큰 틀만 보면 희곡에 가깝다. 하지만 작품의 도입부만 보면 ‘마을의 기록자’가 전하는 전지적 관점의 소설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문장의 분절과 배열을 보면 운문에 가까운 구절이 더 많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지명될 정도로 인정받아온 이스라엘의 국민작가인 저자 다비드 그로스만은 ‘시간 밖으로’를 통해 장르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곧 죽음을 넘어서는 것인 듯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 김승욱 옮김 / 책세상 / 15,000원

bluebell@kukimedia.co.kr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