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취리히 중앙역으로 돌아와 크로아티아 행 기차를 탑니다. 말로만 들었던 침대 칸 야간열차를 드디어 타보네요. 양쪽 벽에 침대가 3개씩 6개가 모여있는 칸이라 침대 높이가 꽤 낮아요. 침대에 걸쳐 앉을 수는 없고 누우면 관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침대였어요. 조금 더 비싼 칸으로 가면 공간도 더 넓어지고 개별 세면대가 딸려있는 곳도 있더라고요. 이 열차를 타고 밤새 달리면 국경을 몇 개 넘어 크로아티아의 제 1도시인 자그레브에 도착합니다.
‘꽃보다 누나’ 촬영지로 유명세를 떨친 크로아티아는 요즘 들어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나라죠. 사실 이번에 크로아티아를 여행지로 고르는 데에 사연(?)이 있습니다. 처음 대략적인 여행 일정을 짤 때 ‘사이프러스’와 ‘첫 유럽 여행을 저렴하게’ 이 두 가지를 염두 했습니다. 하지만 첫 유럽 여행인지라 최대한 많은 곳을 다양하고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이름도 낯선 사이프러스를 여행 코스에 넣다 보니 제약이 많이 생긴 거죠.
일단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행선지는 사이프러스와 가까운 터키가 되었고 비행기 좌석이 남아있던 파리가 첫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파리인(in)-사이프러스-터키 아웃(out)’ 이라는 정해진 일정에서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추가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스위스 친구를 만나러 가게 되어서 ‘파리 인-스위스-사이프러스-터키 아웃’이 되었고요. 이탈리아를 들리기엔 일정도 빡빡할 뿐 아니라 사이프러스까지 가는 직행도 없고 경유를 해도 비행기 값이 무척 비싸더군요. 좀 더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경유지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스위스에서 야간 열차를 탈 수 있는 크로아티아가 갑자기 다음 여행지로 낙점됐습니다.
구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내전 후 독립(1991년)하게 된 크로아티아는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지와 비교 했을 때 물가가 싼 편입니다. 또 90일 이내 체류에는 따로 비자가 필요 없어 편리합니다. 게다가 성수기를 벗어난 시기라 호텔 예약도 어렵지 않아 갑자기 선택된 여행지로는 손색이 없었죠. 크로아티아는 7~8월이 성수기이고 5~6월과 9월은 준 성수기입니다. 10월부터는 비수기에 들어가고 물가가 떨어지지만 내륙 쪽은 추운 겨울이 시작됩니다.
중간 중간 국경을 지나면서 기차 안에서 입국심사를 받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침내 야간열차가 도착한 곳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하지만 일부러 들리는 관광지라기 보다는 비행기나 렌터카 등의 이유로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라고들 하죠. 물론 시내에 볼거리도 있지만 하루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정도고요. 저희 역시 자그레브에선 딱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아침에 렌트카를 빌려 아드리아 해를 따라 남쪽으로 떠날 생각입니다.
크로아티아는 자그레브를 포함한 내륙지역과 아드리아 해와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나뉘는데 바닷가 쪽을 따라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선이 있는 자그레브를 출발점으로 가장 남쪽에 있는 두브로브니크를 여행하는 것이 보통인데요. 대중교통이 편리한 편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들은 렌터카를 선호합니다.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기엔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자그레브에 있는 렌터카들은 주요 도시마다 지점을 두고 언제든지 차를 반납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조금의 편도 비용이 추가되고요. 크로아티아는 차가 많지 않아 운전하기 좋습니다. 해안가 도로를 따라가다가 멋진 풍경 어디서든지 멈춰 설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조금 비싸더라도 렌터카를 선호하게 되죠.
기차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렌터카 및 여행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따로 네비게이션을 빌리지 않고 크로아티아 유심칩을 사서 구글 지도를 이용할 예정이에요. ‘Unlimited surfing in CROATIA’라고 해서 11유로짜리 유심칩을 사면 7일 동안 무제한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합니다. 또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중에서도 물가가 가장 싸요. 남쪽 관광도시로 갈수록 물가가 비싸지기 때문에 이왕 차도 빌렸으니 빵이나 치즈, 과일, 와인 등을 미리 사서 식사비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먼저 시내관광부터 해봐야겠죠? 기차역(Lower Town)과 주요 관광지(Upper Town)가 멀지 않기 때문에 숙소를 이쪽 위치로 잡으면 교통비가 전혀 들지 않아요. 자그레브의 핵심은 성모신청 대성당과 반 옐라치치광장입니다. 대성당에서 3분 거리에 꽃과 과일, 먹거리 등을 파는 있는 돌라츠(Dolac) 재래시장도 볼만 하고요. 단 오후 3시까지만 문을 연답니다.
반 예라치치광장과 중앙역 사이에 동쪽 편으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형마트가 있습니다. 건너편 우체국에서 유심칩도 팔고요. 7일 무제한 유심칩은 현지인들이 흔히 구입하는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통신사를 몇 군데 돌고 물어 물어 찾아낸 이 곳에서 겨우 구입할 수 있었어요. 렌터카 네비게이션 용이라면 가장 먼저 유심칩 확보에 신경을 쓰시는 게 좋습니다. 마트에서는 빵과 소시지, 치즈 등을 구입했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와인도 무척 싼 편이라 한 병 구입했어요. 또 싼 것이 바로 크로아티아 맥주에요. 용량은 큰데 무척 저렴합니다. 쌉싸름 한 깊은 맛도 일품이고요.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권하고 싶어요.
반 옐라치치광장 서점에서 크로아티아 가이드북도 살펴보고 빵집에서 식사용 빵도 사고 무사히 유심칩도 샀으니 오늘의 미션은 모두 성공입니다. 두 손 가득 무겁게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서 마트에서 산 음식들로 든든히 저녁을 먹습니다. 한국 보단 도수가 조금 높은 크로아티아 맥주 한 모금에 피로가 싹 풀리고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이제 내일부터 제대로 된 크로아티아 여행이 시작된다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네요. 술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볼이 발그스레한 채로 잠에 듭니다.
글·사진 | 이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