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승희 기자]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트럼프는 8일(현지시각) 미국 전역에서 열린 대선 투표 결과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대통령에 선출됐습니다.
경선 동안 트럼프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 수차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해 8월 트럼프는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언행을 지적한 여성 앵커에게 “그녀의 눈에서 피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녀의 다른 어딘가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경쟁자인 칼리 피오나를 지칭하며 “누가 저 얼굴에 투표하고 싶겠나”라고 비아냥 대기도 했습니다.
트럼프의 여성 차별적인 발언들은 지난달 7일 폭로된 ‘음담패설 녹취록’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녹취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2005년 “스타면 뭐든 할 수 있도록 (미녀들이) 허용한다”면서 “XX(여성의 성기 지칭)를 움켜쥐고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녹취록 파문이 일며 트럼프의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요. 이에 반해 클린턴은 자신이 ‘여성’ 후보임을 강조했습니다. 클린턴의 딸 챌시 역시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로서의 모습을 소개했고요.
일각에서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트럼프를 의식한 클린턴의 전략으로 해석했습니다.
클린턴은 지난 9월26일 “트럼프가 미스유니버스를 ‘미스 돼지’라고 불렀다”고 언급해 트럼프의 여성 비하적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그 후 비욘세, 레이디 가가, 케이티 페리, 제니퍼 로페스, 오프라 윈프리 등 많은 여성 스타들이 공개적으로 클린턴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실제로 트럼프와 클린턴의 대결은 ‘여혐(여성혐오)후보’와 ‘여성후보’의 대결 그 자체였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6월 “낙태를 하는 여성들은 처벌해야 한다”며 낙태반대론을 주장했습니다. 클린턴에게 “아기를 살해하려는 여자”라고 비난도 서슴치 않았죠.
클린턴은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여성의 권리”라며 트럼프와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했습니다. 또 남녀 임금격차 줄이기,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육아휴직 확대 등 여성정책들을 주로 내세웠습니다.
지난 4월에는 유세 중 “미국의 절반은 여성이다. 나는 미국을 반영하는 내각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부분의 언론은 클린턴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당선확률은 고작 16%에 불과하다”고 예측했고요.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에 트럼프의 당선을 납득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잇따라 반대 시위를 열고 있습니다.
미국 여배우 로즈 맥고완은 “여성에 대한 증오는 더 깊어지고, 더 실감나고 있다. 그것은 즉각 다뤄져야 하고, 절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SNS상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한 주(州)에 여성들이 여행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까지 돌고 있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건 여성 혐오에 동의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 말이죠.
한 미국인은 자신의 SNS에 “트럼프의 승리가 아니다. 인종차별의 승리. 성차별의 승리. 증오의 승리. 교육 결핍의 승리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네티즌은 “혐오의 승리 축하한다” “미국도 겉으로만 진보인 척 했던 거지” “낮은 인성의 승리다. 미국도 상당히 미화된 나라 중 하나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차마 자기들 입으론 말하지 못한 혐오를 트럼프가 말해주니 얼마나 고맙겠어” “여성에 유색인종인 나는 이제 미국에 여행도 못 갈 듯” “힐러리도 깨지 못한 유리천장이라니”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날 클린턴은 자신의 SNS에 “우린 아직도 가장 높고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면서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유리천장이) 부서지게 될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어 “지켜보고 있을 소녀들에게”라며 “이 세상의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거머쥘 만큼 스스로가 소중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미국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유리천장이 부서지는 날은 아직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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