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개명 최서원·60)씨가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이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이어갔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최저치인 4%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역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숨은 지지층을 뜻하는 ‘샤이 박근혜’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위기는 야권 대선 잠룡들에게 기회가 됐다. ‘최순실 게이트’ 사건 초반, 대선 예비 후보자 일부는 서로 눈치를 보며 대통령 탄핵에 대해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각자의 입장을 굳힌 뒤부터는 전국 곳곳의 집회 현장이 자신의 정치 매력을 보일 수 있는 자리가 되면서 지지율을 올리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최씨의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한 인물이다. 그러나 2차 대규모 촛불 집회 이후 태도를 바꿔 ‘대통령 탄핵’을 거론했다.
문 전 대표의 갈지(之)자 행보 때문에 시민단체들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문 전 대표의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 “당내 최대세력인 문 전 대표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민주당도 확실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지난달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싶었지만 끝내 우리를 외면했다”며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의 움직임이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은 계속됐다.
같은 달 29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이유가 조기 대선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문 전 대표는 “국민 공론에 맡기겠다. 그 얘기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즉답을 피했다.
선두에 있는 문 전 대표는 국민에게 박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이번 달 첫째 주보다 지지율이 2.7%p 상승했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대선 주자 지지율에 따르면 이재명 성남 시장은 4주째 지지율이 연속 상승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 시장은 지난주 14.7%의 지지율에서 1.9%p 올라 16.6%를 기록했다. 자신의 최고 지지율도 갈아치운 셈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 11월30일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이 시장은 지지율 17.2%로 2인자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이 시장은 그 전까지만 해도 대선 주자 4위를 기록했지만,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제치고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무섭게 뒤쫓으면서 대선 주자 3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서울 도심과 전국 곳곳에서 진행한 ‘시국 버스킹’과 촛불집회, 자신의 SNS 등을 통해 최순실 국정 개입 사태를 다소 거친 말로 비판하기도 했다. 또 들으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 ‘사이다’ 발언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장은 최씨 사태에 대해 “너무 저급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막장 드라마다. 최순실 감독, 박근혜 주연, 새누리당 조연” “국민도 수치감을 느끼고 있다. 대통령의 무능은 참을 수 있지만, 시민들은 ‘내가 저런 사람에게 지배를 당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등의 언급을 하며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지난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에 의해 언급되면서 대권 잠룡으로 등장했다. 반 총장은 한국인 최초로 UN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랐다는 이유로 국민으로부터 18.2%의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 총장은 능숙한 외교 능력을 갖춘 외교관이지만, 정치인이 아니다”며 “그의 정치적 능력에 대해서 검증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이 전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반 총장은 지난달 2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UN 사무총장으로서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1일부터 나는 미래와 나의 가족, 나의 조국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 최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해 “한국 국민으로서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한국 국민이 현 상황에 대해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편, 반 총장의 지지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새누리당 지지층, TK(대구·경북) 지역과 충청권 등이 ‘최순실 게이트’ 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건’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에게 호재였다. 안 전 대표는 최씨 사태 초기부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하야’라는 강경 투쟁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지난달 16일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이미 대통령 자격을 상실했다”며 “박 대통령은 절대 임기를 채우면 안 된다.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가 박 대통령 탄핵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은 ‘강단이 없다’는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해줬다.
일부 시민들은 안 전 대표가 정치적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항상 간만 보다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간철수’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일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탄핵안 처리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국민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같은 당 안 전 대표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전주보다 지지율 2.3%p 떨어진 7.5%로 대선 주자 4위를 차지했다.
◆ 속 보인 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올해 4월 20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이번이 저의 마지막 총선이 될 것”이라며 “총선의 승패와 상관없이 당 대표를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정치 평론가들은 김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대선을 준비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김 전 대표는 지난 8월 전국을 돌며 민심 읽기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그러나 최씨 사태가 불거지면서 김 전 대표는 지난달 23일 자신이 박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한 것에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불출마 선언이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내각제 개헌을 노리고 총선에 다시 출마할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외에 대선 후보들로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5.0%), 박원순 서울시장(4.3%), 안희정 충남도지사(4.1%), 오세훈 전 서울시장(3.7%),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2.7%) 순으로 나타났다.
tladbcjf@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