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도서정가제가 송인서적과 전자책 업계에 미친 영향

[친절한 쿡기자] 도서정가제가 송인서적과 전자책 업계에 미친 영향

기사승인 2017-01-06 16:19:16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올해 말이면 도서정가제가 개정된 지 3년이 됩니다. 도서정가제는 2014년 11월 높은 할인율을 무기로 중소형 서점과 출판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형 출판 유통사의 공세를 막는다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업계 2위를 지키던 대형서적 도매상 송인서적이 부도를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2일 80여억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맞았고, 이날 은행에서 최종 부도 처리됐습니다. 이로 인해 출판계는 부도 금액 200억원을 포함해 최소 30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송인서적과 거래하던 중소 출판사와 서점들도 줄줄이 폐업 위기를 맞았습니다.

현재 출판업계가 겪고 있는 위기를 떠올리면, 송인서적의 부도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국내 독서 인구가 꾸준히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2000년대부터 온라인 서점이 득세하면서 중소형 서점의 숫자도 급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의 시행이 송인서적의 부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개정되기 전까지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의 도서 공급업체 선정 방식은 최저가 낙찰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최저가 방식이 무의미해지자 추첨 방식으로 바뀌었죠. 그러자 추첨에 참여하고자 이름만 서점으로 등록한 ‘유령서점’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입찰에 참여해 송인서적 같은 도매상에서 책을 사들인 후, 도서관에 납품하고는 납품 대금만 챙겨 사라졌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도매상들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이죠.

또 뉴스1에 따르면 개정된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일부 서점들이 도매상에 정가 대비 납품가 비율(공급률)을 낮춰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도매상 입장에서 출판사에 지불하는 납품 대금은 그대로 나가고, 서점으로부터 받는 돈은 줄어드니 경영이 힘들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전자책 업계는 도서정가제를 우회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전자책도 종이책과 동일하게 정가에서 15% 이상 할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알라딘, 리디북스 등 대형 플랫폼 업체들은 전자책 구매가 아닌 ‘대여’ 개념을 내세워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전자책 대여 서비스는 정가의 50~90%, 혹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기간도 10~50년에 이르는 장기 대여라 사실상 구매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전자책 대여 서비스가 확대되자, 지난해 10월 전재수 의원을 비롯한 열 명의 국회의원이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는 전자출판물을 무료로 대여하거나 이를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에는 전자책 유통 업체들이 무료 대여 서비스를 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 건 전자책과 관련된 영세 출판사, 중소 플랫폼 사업자들을 보호가기 위해서입니다. 영세 출판사, 중소 플랫폼 사업자들은 전자책 무료 대여 서비스를 자금력 있는 대형 기업의 ‘이기주의적 영업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을 헐값에 판매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결국 전자책의 콘텐츠 가치는 하락될 것이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는 대신 콘텐츠 자체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전자책 대여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직 국내 전자책 시장이 작은 만큼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낮은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전자책을 접할 기회를 줘야 성장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5 콘텐츠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20조원 규모의 국내 전체 도서 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2014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문체부가 공개한 전자책 시장의 규모를 봐도 국내 매출은 38억여원(2014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약 5조5000억원, 독일의 5000억원, 프랑스의 3760억원에 비해 한참 부족한 수준이죠.

출판 유통 과정의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제2의 송인서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전자책 업계의 대여 서비스를 용인해야 하는지 대한 논의도 필요하겠죠. 문체부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상 3년마다 도서정가제의 타당성을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침 올해 말이면 3년이 됩니다. 처음 열릴 도서정가제 타당성 검토에서 출판업계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좋은 해법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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