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설치를 두고 시민단체들이 충돌했다.
13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 광장에서 박 전 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렸다.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 대로변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박정희동상설치반대집회’(설립 반대 집회)가 시위를 벌였다. 설립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박정희 동상 반대한다’ ‘헌정질서 파괴범의 동상이 웬말이냐’ 등이 적힌 종이 피켓을 들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군인인 동시에 우리 민족이 해방된 이후에도 임시정부 반대편에서 교전을 수행한 적국 장교”라며 “대한민국 헌법이 ‘4·19 민주이념’을 명시하고 있는 한, 박 전 대통령은 청산 대상이지 결코 기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마포구가 지역구였던 정청래 전 의원도 설립 반대 집회에 함께했다. 정 전 의원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동상을 세우려면 공공미술심의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합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동상 건립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떤 인물의 동상을 세울 때는 그 인물이 역사적으로 기릴 가치가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은 동상으로 세울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박정희기념재단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조영권 정의당 마포구 위원장은 “박정희기념재단 측은 박 전 대통령의 독재가 우리나라 산업 성장을 위해 필요했다고 주장한다”면서 “이는 곧 매국이고 역사를 날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점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언급했다.
동상 설치 반대 집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동상 기증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 기념관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일은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서울시 심의위원회에 신청하여 다시 판단을 받을 것이다”고 전했다. 좌 이사장은 이어 “박 전 대통령 동상은 원래 세종로 대로와 강남 테헤란로에 세우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 동상 역시 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찬성과 반대 집회 참가자들 간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박정희기념재단 측은 설립 반대 집회 기자회견에 난입했다. 양측간 고성과 욕설도 오갔다. 이들은 “미친 XX들아. 박 전 대통령을 찬양하라” “한국의 영웅,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막지 마라”라고 고함쳤다. 반대 측에서는 “시민의 땅에 친일·독재자 동상 어림없다. 박정희 동상 반대한다”고 맞섰다.
인근 주민도 동상 설립 필요성에 의문을 표했다. 상암동 주민 박모(75)씨는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반대한다”며 “박 전 대통령은 일본 천황에게 혈서를 쓰고 충성을 맹세했었다. 청산해야 할 인물”이라고 말했다. 최시은(27·여) 씨는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것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다”며 “아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 동상은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했다. 동상은 높이 4.2m, 중량 3톤의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추진모임 측이 경기도 모처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박 전 대통령 동상은 설치되지 못했다. 박정희 도서관은 서울시가 무상 제공한 ‘시유지’로 동상을 세우려면 서울시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같은 날 “원칙대로 조례에 따라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며 “공공미술위원회에 조만간 임명장을 수여하는 등 심의 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유철 기자 tladbcjf@kukinews.com/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