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엄마는 아이를 빼앗길까 두렵다

모든 엄마는 아이를 빼앗길까 두렵다

<즐거운 노래>로 2016년 공쿠르상 수상한 레일라 슬리마니 작가

기사승인 2017-11-30 00:07:00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장난감 더미 위에 부유하듯 너부러진 아기를 회색 커버 안에 누이고 뼈마디가 비틀어진 몸 위로 지퍼를 채웠다.”

<즐거운 노래>(레일라 슬리마니 저)는 두 유아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비극의 결말을 독자에게 툭 던진 후 겹겹이 쌓인 모성의 심연을 드러내는 지독한 문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해부하듯 묘사한 내러티브는 아기를 빼앗길 수 있다는 모든 엄마의 근원적인 공포를 들춘다. 미국 뉴욕에서 실제 일어난 보모의 유아 살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후문을 차치하더라도, 지독하리만치 세밀한 묘사는 작품의 백미다. 이러한 작품의 폭발적인 힘은 지난해 파격적인 선택이란 평가를 들으며 공쿠르상 수상까지 이어졌다.

 

디테일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을 준다

문학은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는, 모든 것을 구현하는 것이야 말로 문학이다.” ‘문학의 매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시크한 대답이었다.

레일라 슬리마니 작가는 지난 14일 방한, 주한프랑스문화원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작가의 인지도를 반영하듯 이 자리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 독자들도 상당수 자리를 채웠다. 기자는 내러티브 구축을 위한 작가만의 문법과 기자 시절의 경험이 현재 집필 활동에 도움이 되느냐고 물어봤다.

기자 경력은 꽤 도움이 됐다. 기자 시절 취재차 북아프리카를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알지 못했던 것을 느끼고현장의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전달코자 했다.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엄청난설명을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묘사는 큰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작가가 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기자 시절 난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데 이골이 났다.(웃음) 아무리 기사를 잘 써도 단 세 줄 안에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읽히지 않는다. 이 부분은 소설을 쓸 때도 큰 도움이 됐다.(웃음)”

이날 작가와 독자 사이의 문답은 진지했고, 날카로웠다. 일부 내용을 간추려 전한다.

Q. 문학의 매력은.

문학의 매력은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설사 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도 문학에선 이를 구현할 수 있다. 문학은 현실세계와 달리 표면적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한다. 인간의 삶을 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매력적이다.”

Q. 프랑스 문학의 매력은 뭘까.

프랑스 문학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한 가지로 규정짓기 어렵다. 일단 문학의 역할과 관심이 상당하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소설을 가진다고들 말한다. 저마다의 소설이 실제 출판으로 이어지기까진 어렵겠지만, 이 말처럼 프랑스인들은 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전 세계의 출판 관계자들 역시 프랑스 문학을 알리려고 한다. 실제로 내가 공쿠르상을 수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웃음)”

Q. 작가 지망생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일단 쓸 것’.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해보이지만 어렵다. 그래도 글을 쓰라. 고민하지 말고 일단 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작가가 되는 방법이다. 글의 근력을 키워야 내러티브를 습득할 수 있다. 200페이지를 쓴 작품을 버리거나 1년가량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한 적도 있다. 그래도 계속 써야한다.”

Q. 다음번 작품 계획은.

미래의 내 소설에 대해선 절대 말하지 않는다.(웃음) 다만, 위선과 이중성을 가진 인물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한 인물이 덫에 걸리는 이야기.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웃음)”

Q. 공쿠르상 수상에 대하여.

문학상은 잔인하고 정의롭지 않다.(웃음) 어떤 사람들이 작품 심사를 하는지, 분위기가 어떤지에 따라 다르다. 문학계의 정치적인 부분도 작용한다. 물론 항상 이렇다고는 할 수 없다.(웃음)”

Q. 작품 속 가족의 문학적 의미를 논한다면.

가정은 정치적 관계로 이뤄져있다. 엄마-자녀, -녀 사이에는 정치가 작용한다. 가정은 정치적 공간이고, 함께 사는 배우자의 진짜 모습을 잘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거짓과 오해, 모순적인 공간이 가정이다.”

Q.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작품 속 공포의 실재는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나.

우선 소설은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내 작품은 프랑스 사회를 반영하지만, 설명할 자격은 없다. 작품에선 두 개의 공간이 대비돼 나온다. 부르주아와 고독하게 고립된 이들을 함께 그려내고 싶었다. 정치적인 단절이나 분리된 세상으로, 일종의 연극적인 표현 방법이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고 불편해진 것이야말로 프랑스 사회의 단면이라는 생각이다.”

Q. ‘포용력 있는 글쓰기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데,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이러한 제안을 하고 있다. 남녀의 성을 모두 포함한 단어 등을 말이다. 그러나 이는 글쓰기라고 할 수 없다. 언어는 어원이 중요하다. 이러한 표현으로 글을 쓰면 읽을 수 없게 된다. 다만, 직업을 중성화 표현으로 바꾸는 것은 동의한다. 일례로 교수’(Professeur)의 경우 남성형이다. 이는 언어적 관습에 의한 것으로 형평성의 법칙보다는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게 적절하다는 관점이다.”

*문법적 성(文法的 性)은 프랑스어 등에서 언어에 성 개념을 두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한국어에는 이러한 개념이 없다. 언어에 성 구분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양성평등 및 여성주의자들은 포용적 표현을 주장,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Q. 집필은 어떻게 하나.

시골의 조용한 곳에서 밤낮없이 글을 쓴다. 고립된 상태에서 완전히 홀로 글을 쓴다. 잠에서 깨면 글을 쓰고, 잠시 산책을 한 후 또 글을 쓴다. 난 현실과 분리되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시간 개념 없이 글을 쓰고 현실과 단절된 상태로 글을 쓴다.”


레일라 슬리마니 작가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핫한작가다. 작가의 이번 방한은,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6일 레일라 슬리마니 작가를 프랑코포니 담당 대통령 특사로 임명했다. 작가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통해 프랑스어와 다중언어주의 및 프랑코포니 회원국들(한국도 프랑코포니 회원국이다)에 상당한 홍보를 이끌어 내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는 프랑코포니 상임 이사회에 프랑스를 대표해 참석하는 등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들로 구성된 국제 기구다. 한국도 회원국. 매년 320일은 국제 프랑코포니의 날로 이때 전 세계에서 프랑코포니 축제가 개최된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1981년 모로코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1999년 프랑스로 이주, 파리 정치대학에서 수학했다. 2008년부터 아프리카 시사 주간지 <젊은 아프리카>에서 기자로 재직하다 글쓰기에 매진하기 위해 2012년 회사를 관뒀다. 2014년 첫 번째 소설 <오크의 정원에서>를 출간했고, 두 번째 작품 <달콤한 노래>2016년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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