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으로 챔피언 메달도 땄지만 마흔 살이 된 지금은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것으로 연명하는 조하(이병헌)는 어느 날 들어간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 인숙(윤여정)을 만난다. 중학교 때 조하가 있던 집을 나간 인숙에게는 조하가 몰랐던 동생 진태(박정민)가 있다. 진태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게임과 피아노에는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아이다.
오갈 곳이 없던 조하에게 인숙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애원한다. 조하가 어릴 적 조하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해버렸지만,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집을 나갈 때 눈이 마주쳤던 어린 조하에 대한 애틋함이 있기 때문.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짐이 있다. 바로 인숙이 아니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진태다. 엄마가 없으면 복지시설로 가야만 하는 진태를 조하가 책임져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인숙의 마음을 조하는 금세 눈치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은 사회의 최약자로 존재하는 이들이 가족으로서 서로를 보듬는 이야기다. 가정사 때문에 집도 절도 없이 길을 떠돌던 조하와 평생 고생만 한 인숙, 서번트 증후군으로 세상의 편견 속에 살아가는 진태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눈물을 예비해야 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려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서번트 증후군을 연기한 박정민이다. 박정민은 익히 그 연기력으로 이름난 바 있으나, ‘그것만이 내 세상’ 이후에는 더 이상 누구도 박정민의 연기력을 검증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사회성이 떨어지는데다 의사소통 능력도 현저하게 낮지만 한 가지에만은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은 그 사례가 그리 많지 않아 연기를 하는 데에 있어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
3일 오후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그것만이 내 세상’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최성현 감독은 “박정민은 큰 디렉션 없이 홀로 연기를 준비했다”고 말해 박정민의 연기력을 입증했다. 영화 속 진태는 엉뚱한 곳에 인사를 하거나 동작이 느려 답답함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웃음이 터지고 때로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 드라마적 연출이 모두 진태라는 인물에 집중되어 있어 자칫하면 촌스러워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민은 진태를 수더분하게 마무리해 세상에 내놨다.
한물 간 복서 조하 역의 이병헌 또한 최근의 묵직한 연기와는 다른 모습을 선보여 웃음을 유발했다. ‘해피투게더’ 이후 20년. 이병헌의 동네 백수 양아치 역은 반갑기까지 한 모습이다. 엄마 인숙 역을 맡은 윤여정 또한 탄탄한 연기력으로 두 형제를 뒷받침했다. 아쉬운 점은 극의 구성이 관객들이 익히 보아오다 못해 이제는 보려고 하지 않는 종류의 올드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17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