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미국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안보영향 조사보고서(Section 232 Investigation on the Effect of Imports of Steel on U.S. National Security)’를 발표했다. 그 즉시 국제적인 파장이 일었다. 여기에는 600여 종류의 철강 제품을 수입규제 대상 권고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상무부는 미 안보에 수입 철강이 위협이 된다는 논리를 내놨다. 표면적으로는 힘의 논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안보’의 해석을 미국이 실제로 손에 쥘 분명한 ‘무엇’으로 놓고 보면 논리는 매우 명료해진다. 즉, 자국의 철강 산업 가동률 상승 및 이러한 경제 효과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율 확보로 이어지게 만들겠다는 정치·경제적 노림수다.
정가에서는 정치와 경제를 ‘불가분의 관계’로 빗댄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미국에게 통상은 공화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 최악의 경우 탄핵이라는 악재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에 더욱 열을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단적인 예가 바로 이번 규제안이다. 상무부에 이번 조사를 지시한 주체나, 권고안 수용의 최종 결정자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단 중국은 발끈했다. 반면, 중국과 ‘한 몸’으로 엮인 우리 정부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야당은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통상과 안보의 분리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현재까지는 WTO 제소 등의 방안이 거론될 뿐, 별도의 ‘히든카드’는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설사 WTO 제소가 이뤄져도 미국의 철강 규제가 우리가 원하는대로 풀리리란 보장은 ‘0’에 가깝다.
[쿠키뉴스 탐사보도] “(철강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외교・안보적인 시각에서 확대해석하거나 상대방 국가에 대한 비우호적인 조치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중략) 미 상무부는 지난 2월 16일 철강 수입이 미국 안보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며 철강 수입을 제한하는 내용의 미 무역확장법 제232조 조사 결과를 공개하였습니다. 이번 미 측의 조사의 목적은 미국 국내 철강 산업의 보호를 위해 수입을 억제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정치・외교적 관점보다는 미국의 경제・산업적인 고려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후략)”
20일에 있었던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의 브리핑 중 일부다. ‘위대한 미국’를 기치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1년여 동안 미국은 한국의 철강과 세탁기, 그리고 자동차 분야 등과 같은 대미수출 분야에 차근차근 제동을 걸어왔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이번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안보영향 조사보고서’는 우리 철강 산업에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20여종에 달하는 한국산 철강제품에 53%의 ‘관세 폭탄’ 항목을 차치하더라도 당분간 소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철강을 비롯해 세탁기와 자동차 등 관련 산업의 고용 현황만 봐도 이들 분야가 우리 경제에 어떠한 비중을 갖는 지 알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제조업 종사자 415만여 명 중 83만여 명(20%)이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규제안의 본질은 ‘정치’다. 다음은 외교안보연구소 신성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의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신경은 통상에 쏠려있다. 철강 규제를 비롯, 모든 사안은 정치적인 의도 하에 진행된다. 일례로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 트럼프 행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을 보라. 만약 민주당이 공화당 하원의원의 40석을 차지하면,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손발은 묶이고 만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시, 탄핵 절차에 돌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세이긴 하지만, 다급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공화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과) 경제는 동맹이 아니’라는 말은 현재의 미국 정치 상황을 함축한 것이다.”
정리하면, ‘경제 활성화-지지율 상승-선거 다수당 지위 확보’의 정치 사이클에서 보호무역주의에 기반을 둔 각종 규제안은 첫 단계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스처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다시 여러 상황적 요소로 세분화된다. 미국의 20조불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국가채무와 ‘정부 셧다운’ 타개를 위한 공화당 강경파의 설득 논리, 그리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대선에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기본 토대는 철저히 정치를 위한 경제 논리라는 게 신 연구부장의 분석이다.
◇ 미국의 안보는 ‘돈’이다
“무역확정법 232조에서 안보는 곧 ‘돈’을 의미한다. 외교·안보와 통상은 별개라는 우리의 입장은 미국의 그것에 견줘 ‘통상’에 집중하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럽(EU)을 포함한 타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미동맹 및 대북정책과 이번 사안을 결부 짓는 것은 난센스다. 미국은 확실한 경제 논리로 철강 규제를 접근하고 있다. 다만, 그간 미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아왔음에도 과연 관련 부처의 대응이 어떠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외교안보연구소 신성원 경제통상연구부장)
수입 철강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라는 전제는 다분히 일방적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국무역협회 제현정 통상지원단 차장은 “규제안에서 국가안보 위협을 근거로 삼은 것은 과도하다. 이는 주관적이며 위험하다. 관련해서 규제안에 명시된 조치 품목은 매우 광범위하고 관세율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민변 송기호 국제통상위원도 “규제안의 각종 수치들은 어떻게 하면 미국의 철강 산업 가동률을 현재의 72%에서 80%로 끌어올릴지를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수입 철강이 미국의 가동률 70%를 야기했고, 이것이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80%가 될시 위협이 해소되는가. 전혀 아니다. 권고안에 포함된 각안들은 국제법상 정당화될 수 없는 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철강 분야 전문가는 “국내 철강 산업에 매우 큰 악재다. 작년에 가장 많이 늘어난 철강제품이 송유관과 유정용 강관 등인데 수출물량 대부분이 미국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높은 관세를 맞게 된다면 국내 강관사들의 수출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귀띔했다.
사실 미국의 수입 철강에 대한 고관세율 조치가 새롭지는 않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에 조사를 지시했을 당시만 해도, 우리 정부와 관련 업계에선 지금의 결과를 예측이 했었다. 연장선상에서 정부의 WTO 제소 거론 역시 새삼스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신성원 부장은 “미국은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수차례 경고를 해왔다. 우린 저렴한 중국산 열연 코일을 수입, 재가공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대미수출은 대부분 이러한 방식이다. 미국이 한국의 철강 문제를 중국과 한 몸으로 바라보는 이유다”고 분석했다.
제현정 차장도 “그동안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반덤핑 및 산계감세는 계속 있어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이미 취해졌고, 이젠 철강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까지 예고됐다. WTO 제소 여부를 고려해야 할 상황인 마당에 더이상 안보 이슈에 끌려 다니기보단, 통상에서 ‘할 말은 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일 것이다. 이젠 대통령도 나설 타이밍이 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송기호 국제통상위원은 협상을 위한 '히든카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철강 규제가 자국에도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리 나름의 소위 ‘지렛대’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권고안대로 규제를 가하면, 철강을 원재료로 하는 미국 내 수출 산업의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해당 규제가 과연 미국의 이익에 합당한지 의문시된다는 말이다. 미국 내에서 적잖은 반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현정 차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 규제를 예고했을 때부터 미국 내 철강 제품 수출 기업들의 위축 우려보다 자국 내 철강 제조 산업에 집중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때문에 철강 폭탄 관세가 미국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우리의 협상 카드로써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뭇 비판적인 견해를 내놨다.
규제 대상국간의 공동 대응이 압박용 '카드'가 될 수 있단 주장마저 나온다. 이에 대해 신성원 연구부장은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신 부장은 “WTO 패널로 규제 국가들 사이에 일정 부분 말을 ‘맞춰볼 순’ 있겠지만, 공동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상은 수출국과 수입국 양국간에 협상이 진행되는 게 원칙이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미국을 WTO에 제소하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성원 부장의 말이다. “WTO 제소는 상징성을 가질 뿐 우리에게 유의미한 카드는 아니다. 우리가 이기면 미국 입장에선 부담은 되겠지만, 미국이 WTO 권고를 이행할 의무는 없다. 한 마디로 미국은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미 무역에서 한국은 300억불 가량의 무역 흑자를 본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미국은 시장이자 소비자이고, 우린 이곳에 수출을 하는 판매자의 입장이다. 서로의 입장차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송기호 국제통상위원 역시 “WTO 제소는 미국의 행동 변화를 기대키 어려운 대응책”이라고 우려했다.
◇ ‘힘들다’는 여론의 맹점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의 대형 철강 기업들의 수출 제품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지만, 강관 제품의 소재를 제공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수출선을 다변화하고 고급 제품 위주의 판매전략 등 자구책을 마련해왔기 때문에 예상보다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강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규제안과 관련해 철강 업계의 목소릴 청취코자 했지만, 취재에 적잖은 난항이 있었다. 그 까닭에 대해 한국무역협회 제현정 통상지원단 차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이 작정하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기업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다. 우리 기업이 해당 조치로 인해 애로를 겪는단 사실을 함구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이는 경제의 상당 부분이 심리적인 요소에 좌우되는 탓이다. 투자 정보가 완전히 열려있는 상황에서 특정 시장과 기업들의 부정적 여론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속앓이를 해도 말을 아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인용 보도 시 <쿠키뉴스 탐사보도>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쿠키뉴스에 있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