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달수가 성추행·성폭행 의혹에 관해 인정하고 자숙에 들어갔습니다. 빨간 불이 켜진 것은 그가 출연을 결정했거나 이미 촬영을 끝낸 영화들입니다. ‘1000만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은 만큼 수많은 작품들이 재촬영의 딜레마에 빠졌죠.
‘신 스틸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오달수는 충무로 조연 배우들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중인 영화만 4편입니다. ‘신과함께-인과 연’ ‘이웃사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컨트롤’이죠. 그나마 ‘신과함께-인과 연’은 사정이 나은 축입니다. 해당 작품에서 오달수는 지옥의 판관 역으로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제작사 측은 이미 재촬영을 결정하고 오달수를 대신할 배우를 캐스팅 중입니다. 세트를 다시 지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신과함께’의 전작인 ‘신과함께-죄와 벌’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입니다. 후속작인 ‘신과함께-인과 연’ 또한 많은 관객을 동원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 성폭행 사실을 인정한 배우를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죠.
문제는 나머지 세 영화입니다. ‘이웃사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컨트롤’의 경우 오달수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조연배우라고는 하나 주연 배우들과 함께 찍힌 장면이 워낙 많아 단순히 편집만 해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재촬영을 할 수도 없습니다. 세 작품 다 오달수가 작품 전반에 걸쳐 고르게 출연하기 때문에, 사실상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죠. 그러나 다 찍어놓은 영화를 다시 찍는다는 것은 예산부터 배우들의 일정 문제까지, 어려움 투성이입니다. 배우 한 사람의 자기관리 부실과 문제의식 부재가 충무로에 큰 악재를 가져온 셈입니다.
충무로뿐만 아닙니다. tvN ‘나의 아저씨’ 측 또한 오달수의 성폭행 의혹에 큰 피해를 본 작품이죠. 당초 오달수에게 피해를 본 피해자들의 폭로 시기와 드라마 크랭크인 시점이 맞물려 ‘나의 아저씨’ 측은 시청자들의 공식입장 요구에 며칠이나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오달수 측이 당초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다가 연극배우 엄지영 씨의 실명 인터뷰 이후 태도를 달리하면서 ‘나의 아저씨’ 측도 입장 정리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입니다. 가뜩이나 ‘나의 아저씨’는 중년 남성과 이십대 초반 여성의 로맨스를 소재로 하고 있어, 젊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방영 전부터 미운털이 박힌 바 더욱 조심스러웠죠. 결국 ‘나의 아저씨’ 측은 오달수 대신 대체 배우로 박호산을 선택했습니다.
이로서 대중예술계는 캐스팅 전후 새로운 기준을 더하게 됐습니다. 배우의 자기관리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자기관리라는 기준은 있었으나, 이 경우 ‘배우가 그간 법적으로, 인간적으로 옳은 행보를 걸어왔는가’가 포함된다는 것이 다릅니다. ‘미투’운동으로 불거진 수많은 성추행들이 위계에 의한 범죄였으니만큼 선·후배 위계가 남다른 대중문화계는 이를 더욱 엄격히 판단해야 하겠죠.
재미있는 것은 충무로 관계자들의 반응입니다. 몇몇 충무로 관계자는 “현재 충무로의 흥행 파워를 쥐고 있는 것은 거의 30-50대 남자 배우”라며 “그러나 이 배우들이 그간 개인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두 파악하기 어려워 캐스팅이 겁날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30-50대 남자 배우에게만 흥행 파워를 쥐어준 것은 충무로의 제작사들입니다. 30-50대 남자 영화배우들만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충무로. 작금의 영화계 또한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 이뤄지는 환경을 조성한 데 책임이 있는 것 아닐까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