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중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미리 처리하지 않아 나중에 큰 힘을 들이게 된다는 뜻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전자가 직면한 상황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1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 1심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와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간 벌어진 특허권 분쟁에서 이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이 교수가 미국에서 취득한 ‘핀펫(FinFET)’ 기술 특허권을 삼성전자가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배심원단은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한 삼성전자에 4억달러(한화 약 4400억원)fmf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교수가 재직했던 국립대 측과 연락을 취한 정황, 산업통상자원부에 이 교수의 기술 유출 혐의 조사를 요구한 점 등이 삼성전자의 고의적인 특허 침해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고의성이 1심 최종 판결에서 인정될 경우 배상액은 최대 3배인 12억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삼성전자를 향한 비난의 수위는 높아지는 양상이다. 경쟁사인 인텔은 일찌감치 이 교수의 특허 권한을 양도받은 카이스트의 자회사 ㈜케이아이피(KIP)에 100억원의 값을 지불하고 해당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배심원단 판결이 나온 이후 항소를 포함한 모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열린 애플과의 재판에서 보인 양상과 비슷하다. 미국 법원이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해 삼성전자에 배상액 9억3000만 달러 지급을 판결하자 삼성전자는 이에 불복, 상고한 바 있다.
계속되는 특허권 분쟁 소식에 여론도 싸늘하다. 대기업들의 기술 탈취 등에 대해 반발심이 강한 국민 정서가 깔린 탓이다. 재판에 불복하는 행위가 자칫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로 비칠 가능성도 높다.
특허권은 특허법‧실용신안법‧의장법에 의하여 발명‧실용신안‧의장에 관하여 독점적‧배타적으로 가지는 지배권을 뜻한다. 제조업인 삼성전자가 특허권이 지닌 의미를 몰랐을 리 없는 만큼, 1심 확정판결이 나면 비판 수위는 더 높아지지 않을까. 특허권 재판이 발생하기 전 충분히 원만한 합의로 해결할 수 있었던 만큼 삼성 측 대처가 아쉽기만 하다.
이승희 기자 aga445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