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날에도 제 주인 못 찾는 ‘임산부 배려석’

임산부의 날에도 제 주인 못 찾는 ‘임산부 배려석’

“지하철 출퇴근? 엄두 못 내”…임산부 없는 임산부 배려석

기사승인 2018-10-10 14:41:37

#임산부임을 알리는 배지를 착용했지만 소용없었다. 차량 1칸에 2석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은 오늘도 역시나 만석이었다. 임신 8주차에 접어든 직장인 엄모(31·여)씨는 서울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한다. 엄씨는 “자리에 앉아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 회사까지 서서 간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의 임산부 배려석은 지난 2013년 12월부터 시행됐다. 차량 1칸마다 2석씩 마련됐다. 임산부 배려석임을 표시하는 엠블럼 스티커를 좌석 위에 부착했다. 지난 2015년부터는 임산부 배려석의 좌석 색깔과 바닥을 분홍색으로 변경, 눈에 잘 띄도록 했다. 

그러나 임산부 배려석은 여전히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추가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임산부의 날인 10일 오전 7시30분부터 오전 9시30분까지 서울지하철 1호선과 2호선, 4호선 일부 구간을 돌며 임산부 배려석 운영 실태를 살폈다. 혼잡한 출근시간대, 서울지하철 1호선 회기역에서 인천 방면 열차에 올랐다. 탑승하자마자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칸을 옮기니 임신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여성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착석해 있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에게 임신 여부를 물었다. 여성은 손사래를 쳤다.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하는 다수는 꾸벅꾸벅 졸거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근에 임산부가 있어도 알아채기 어려워 보였다. 이날 살핀 임산부 배려석 대다수에는 사람들이 착석해 있었다. 인파로 혼잡한 가운데에도 비어 있던 노약자석과는 대조적이었다.

지하철이 한산해져도 임산부 배려석은 만석이었다. 오전 9시10분, 한 중년 남성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 다른 빈 좌석 대신 해당 좌석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핀잔이 돌아왔다. 그는 “오른편에 사람이 없어 편한 자리다. 비워놓고 가면 아깝지 않으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무수한 사람 중 실제 임산부임을 확인할 수 있던 여성은 4명에 불과했다.  

임산부 혹은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지하철 이용과 관련 불편을 호소했다. 임신 8개월차인 이모(33·여)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며 “임산부 배려석에는 대부분 사람이 앉아있다. 그 앞에 서면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 앉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출입문 근처에 몸을 기댄다”고 이야기했다. 14개월 영아를 자녀로 둔 임모(30·여)씨는 “임신했을 당시에는 주로 택시를 이용했다”며 “지하철을 타도 임산부 배려석에 못 앉아가는 일이 많았다. 아예 지하철 이용을 체념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같은 시기 임신했던 지인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며 “만삭 때도 자리를 양보받지 못해 퇴근 후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의 운영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인다. 부산지하철 일부 노선에서는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핑크라이트’를 활용한 임산부 배려석이 운영되고 있다. 발신기를 소지한 임산부가 지하철을 타면 임산부 배려석에 설치된 수신기가 깜박이는 방식이다.

인천공항과 서울역을 오가는 공항철도, 대전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에는 인형이 비치돼 있다.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임산부 배려석입니다. 자리를 비워두세요’라는 문구를 든 인형을 안고 있어야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관리 감독과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이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임신·출산을 준비 중인 여성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부산·대전지하철 등의 방식이 모든 지하철에 도입되면 좋겠다’ ‘임산부 배지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이 많다. 임산부 배려석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다만 제도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 중인 서울교통공사는 “타 지역 지하철공사에서 실시 중인 ‘임산부 배려석에 곰인형 놓기’ 등의 계획은 현재 없다”며 “서울지하철은 타 지역 지하철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리 규모가 크다. (인형을 이용한) 방화와 오염 및 훼손에 대한 관리의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지하철을 운영 중인 대전도시철도공사는 84량을 운영 중이지만, 서울교통공사는 3551량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놓자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열차 내 안내방송과 역사·전동차 내 모니터를 통해 해당 캠페인을 홍보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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