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게임즈가 그린 밑그림이 조금씩 윤곽을 갖춰가고 있다. 비록 롤챔피언스코리아(LCK)가 국내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리그 간 수준 평준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20일부터 21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된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롤드컵)' 8강 토너먼트에서 LCK 대표로 나간 kt 롤스터와 아프리카 프릭스는 인빅터스 게이밍(IG·중국)과 클라우드9(C9·북미)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젠지를 포함한 LCK 대표 3팀이 모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롤드컵 준결승에 한국팀이 오르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3년간의 결승전이 모두 한국팀 간의 내전이었을 정도로 LCK는 롤 e스포츠판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LCK는 올 시즌 MSI(미드시즌인비테이셔널)를 포함한 국제무대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빠른 템포의 교전과 한타 위주의 메타 속에 고전했다. LCK는 운영에 강점이 있는 리그다. 체계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유리한 경기를 확실하게 가져갔다. 그런데 이 강점만 지나치게 고집하면서 메타 변화를 캐치하는 데 소홀했다. 타 리그가 적극적인 교전으로 이득을 취할 때, LCK는 안정적이고 확률 높은 경기 운영만 고집했다.
21일 열린 아프리카와 C9의 경기가 현 LCK 팀의 주소를 말해준다. 아프리카는 2세트 킬 스코어에서 압도적으로 앞섰지만 전투를 피하고 운영에 돌입하려다 크게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3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리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전투를 펼치려 했던 C9와 다르게 아프리카는 유리한 상황에도 진영을 물리기 급급해 역전을 내줬다.
플래시울브즈(FW·대만)의 미드라이너 ‘메이플’ 이 탕 후앙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LCK팀들의 부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금 버전에서는 물론 운영도 중요하지만 초반 싸움이 더 중요하다”면서 “지금 버전에선 경기 초반에 계속 싸움을 붙여야 한다. 예전의 운영으로는 초반에 이득을 보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각 리그 수준이 상향평준화 된 것도 LCK 몰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졌던 kt는 LCK내에서 가장 전투적인 팀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IG와의 진검 승부에서 패했다. 또 다른 우승후보인 중국의 로얄네버기브업(RNG) 역시 두 수 아래로 평가 받던 G2 e스포츠에게 2-3으로 패했다.
평준화의 이유 중 하나로는 한국인 코치들의 해외 유출이 꼽힌다.
보편적인 훈련법과 운영법이 해외 팀에 자리 잡았다는 주장이다. 4강에 오른 IG엔 김성수 코치가, C9엔 복한규 감독과 ‘빠른별’ 정민성 코치가 지휘봉을 잡고 있다. LCK식 운영법에 서구 리그 특유의 개성까지 더해져 무서운 팀으로 성장했다. 탈락한 RNG 역시 손대영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이후 세계최고의 팀으로 자리 잡았다.
소극적인 투자가 참사를 불러왔던 평가도 있다. 중국·북미 등의 e스포츠 산업은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LCK는 삼성이 팀 운영에서 손을 떼는 등 투자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시장 규모의 격차가 커지다보니 코치진뿐만 아니라 국내 유망주들이 해외 리그에서 데뷔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LCK내에서 롤드컵 우승 등으로 명예를 얻은 선수들도 더 나은 대우를 받고자 해외 리그 이적을 결심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무대가 남의 잔치가 된 LCK는 딱하지만, 라이엇은 쾌재를 부를 것으로 보인다.
4강에는 현재 유럽 2팀, 북미 1팀, 중국 1팀이 올라가 있다. LCK의 다년간의 독주로 타 리그 팬들의 흥미가 반감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상적인 대진표가 만들어졌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륙별 수준 평준화는 향후 롤 e스포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 팬들도 LCK 팀들의 탈락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흥미진진해진 경기 내용에 호평을 보내고 있다. 이전보다 속도감 있는, 잦은 교전의 경기가 보는 재미를 한 층 더 증가시켰다는 평가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