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정당한 사유 해당”…14년 만에 판결 뒤집혀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정당한 사유 해당”…14년 만에 판결 뒤집혀

기사승인 2018-11-01 12:10:03

대법원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오전 11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씨에 대한 상고심 판결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오씨는 지난 2013년 현역 입영 통지에 불응해 1,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이날 다수 의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88조(입영의 기피)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국가가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거나 위협”이라며 “이는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봤다. 김재형 대법관 등은 보충의견에서 “양심의 자유는 인간 존엄의 필수적 전제”라며 “개인의 내면적 양심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으며 국가라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못박았다. 

다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박상옥 대법관 등은 “정당한 사유는 당사자의 질병이나 재난의 발생 등 일반적이고 객관적 사유에 한정돼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종교의 신도가 늘어날수록 입대 군인이 줄어들어 군대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단이 ‘사실상 무죄’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참여연대와 군인권센터 등은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살다 지난 9월 출소한 박상욱씨는 “그동안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밤을 지새웠다”며 “대법원의 판결 취지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는 “비록 무죄가 선고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고등법원에서 조만간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고 본다”며 “현재 계류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의 공소 취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 2004년 같은 쟁점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피고인이 내세운 권리는 병역의무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다”며 ‘양심의 자유’ 등이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양심의 자유가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헌재)는 지난 6월28일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병역의 종류) 1항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양심의 진실성이 인정될 경우, 법원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입영거부 또는 소집 불응 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할 것을 기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각급 법원에서 진행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등에 따르면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은 227건이다. 1, 2심 사건까지 합치면 약 1000여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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