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노동자상’(노동자상)의 설치를 두고 정부와 시민단체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4일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강제징용노동자상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지난 10월16일 기준 변상금 114만8830원과 연체료 2만1900원을 납부해야 한다. 추진위가 서울 용산역 광장 에 노동자상을 무단으로 설립, 국유지를 점유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의 단체가 모인 추진위는 지난해 8월12일 용산역 광장에 노동자상을 세웠다. 용산역은 일제강점기 전국 각지에서 강제동원된 조선인이 집결했던 장소다. 이곳에 모였던 조선인들은 일본과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추진위는 용산역 광장에 노동자상 설립을 요청했으나 국토교통부(국토부)는 끝내 불허했다. 노동자상은 불법 점거물인 상태로 약 1년4개월을 보냈다.
국토부는 노동자상이 여전히 불법 점유물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노동자상은 정상적인 사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노동자상에 대한 입장은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부 측은 당시 추진위에 철거를 요청하며 철거하지 않을 시 강제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국토부로부터 행정집행을 위임받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추진위 측에 변상금을 부과하며 노동자상 이전을 요청 중이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충돌 속에서 노동자상은 훼손·철거 위험에 놓여있다. 지난 10월 노동자상과 함께 설치된 표지석 곳곳에서 낙서가 발견됐다. 일부 낙서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영정사진과 영정을 든 유가족의 얼굴에 집중됐다. 추진위에서 복원을 진행했으나 현재 흐릿하게 형체만 남아있는 상태다.
용산역 앞 노동자상은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의 선례처럼 공공조형물로 지정되기도 어렵다. 노동자상보다 앞서 설치됐던 전국의 소녀상들은 파손되거나 자물쇠가 채워지는 등의 수난을 겪었다. 이후 일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 체계적인 관리·감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용산역 광장은 지자체가 아닌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유지다. 지자체 관할에 속해야 하는 공공조형물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추진위는 갈등 종식을 위해 노동자상을 정부에 기부채납하는 방안 등을 고려중이다. 다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기부채납은 철도행정 목적에 부합해야 가능하다”며 “노동자상은 철도와 무관해 어쩔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상을 둘러싼 논란은 부산에서도 발생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건립특위)는 시민 모금 등을 통해 지난 5월1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노동자상을 건립했다. 앞서 설치된 부산 소녀상에서 약 40m 떨어진 위치였다. 정부와 지자체는 “외교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부산 동구청은 같은달 31일 오후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했다. 부산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임시 보관됐던 노동자상은 지난 7월4일에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시민단체는 지속적으로 소녀상 옆에 설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김병준 건립특위 위원장은 “일본 영사관 앞에 경찰 병력이 상주하고 있어 노동자상 건립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영사관 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을 세우겠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다. 향후 집회를 통해 건립 의지를 다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동구청은 건립특위와의 협의를 강조했다. 영사관 앞 노동자상 건립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드러내지 않았다. 동구청 관계자는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동구청의 수장이 새롭게 바뀌었다. 이후 건립특위의 방문을 기다렸으나 성사되지 못했다”며 “건립특위와 언제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 대화를 통해 입장 차이를 줄여 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