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을 겪은 주인공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 앞마당에 도착해 안도의 표정을 지은 후 가족들과 포옹을 하죠. 주인공은 집에 들어서며 평화로운 ‘엔딩’을 맞이합니다. 반대로 공포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는 이와 사투를 벌입니다. ‘집에서 안전을 위협받는다’는 인식은 공포를 배가시킵니다. 집은 사람들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집니다. 편안한 옷을 입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부의 정도를 가늠하는 ‘재산’입니다. 지역, 아파트 브랜드, 평수 등으로 계층을 나누기도 합니다. 편 가르기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발생합니다.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의 정문은 임대 주민이 이용할 수 없습니다. 펜스를 쳐 분양·매매동과 임대동을 나눴기 때문입니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임대동 거주 아이들의 놀이터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주거 형태에 따른 멸칭이 존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 큰 문제는 재산으로서의 집과 주거 공간으로서 집이 충돌할 때입니다. 재개발은 노후된 주택단지를 아파트로 탈바꿈시켜 부동산의 가치를 올립니다. 그러나 재개발 지역에 살던 전·월세 거주자들은 거리로 내몰립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살던 고(故) 박준경씨는 재개발 과정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월세방을 잃었습니다. 그가 살던 곳은 ‘아현2구역’이 됐습니다. 고 박씨는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든 것을 뺏기고 쫓겨나 가방 하나만 남았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이런 선택을 한다”며 지난 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재개발이 결정된 이후 고 박씨에게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철거민연합에 따르면 고 박씨는 지난 9월 강제집행 이후 거주할 곳을 찾지 못해 개발지구 내 빈집을 전전했습니다. 지난달 30일 강제집행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렸고 끝내 안타까운 죽음을 택했습니다. ‘용산 참사’ 후 9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터전을 빼앗긴 이의 죽음은 언제까지 반복돼야 할까요. ‘집이 결국 재산’이라는 신화는 무너질 기미가 없습니다. 서울의 집값은 천정부지입니다. 지난해 주거실태조사 결과, 서울의 연 소득 대비 주택구입가격 비율은 8.8배였습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해 소득 한 푼 쓰지 않고 9년 가까이 모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강남 3구(서울 서초구·송파구·강남구)’ 중 하나인 서울 서초구에 집을 사기 위해서는 21년 동안 소득을 꼬박 모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인 서민은 평생 돈을 모아도 ‘입성’할 수 없는 강남 3구에 국회의원 4명 중 1명이 살고 있습니다. 20대 국회의원 287명 중 74명은 강남 3구에 주택을 보유 중입니다. 부동산 정책 관련 고위공무원의 46%도 강남 3구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과연 집은 주거 공간일까요, 재산일까요.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리고 싶다” 고 박씨는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집 걱정’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국회 그리고 정부는 그의 죽음에 어떠한 답을 내놓아야 할까요.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