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서 피의자로 추락한 양승태, 불명예 역사를 쓰다

대법원장서 피의자로 추락한 양승태, 불명예 역사를 쓰다

기사승인 2019-01-11 04:00:00

사법 권력의 정점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9시30분 서울중앙지검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는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사법농단’ 관련 양 전 대법원장 관련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재판 거래’와 판사 블랙리스트 지시, 비자금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 ‘엘리트 판사’로 시작한 법조 인생…퇴임 앞두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터져  

양 전 대법원장은 판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7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거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판사를 일컫는 이른바 ‘경판(京判)’으로 첫 발을 디뎠다. 이후 제주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을 거쳐 지난 2005년 대법관으로 발탁됐다.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으로 임명됐다. 

탄탄대로였던 그의 경력은 지난 2017년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며 삐걱대기 시작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내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압박했다는 의혹은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커졌다.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부의 기조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명단을 작성·관리 해왔다는 것이다. 법원 내 자체 조사에서 “블랙리스트는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일부 판사들이 반발하며 추가 조사를 요구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는 없다”는 뜻을 관철했다. 

▲양승태 사법부, 사법농단 의혹 ‘일파만파’…포토라인·구속기소 불명예 

같은 해 9월 양 전 대법원장의 퇴임 후, 후임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됐다. 김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를 지시했고, 조사 결과 블랙리스트 의혹은 재판 거래 의혹으로 일파만파 불어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소송과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KTX 승무원 해고, 통합진보당 해산 등 특정 재판을 거론하며 청와대에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협력을 구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도 포착됐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 내 비자금 조성 의혹과 탄핵을 앞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한 법리 검토 의혹도 제기됐다.

양승태 사법부에서 일했던 전·현직 대법관들은 ‘사상 초유 압수수색’, ‘헌정 사상 첫 포토라인’ ‘전대미문 구속영장 발부’ 등의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냈던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2년부터 지난 2017년까지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차장을 지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기소 되는 직격탄을 맞았다. 임 전 차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공무상비밀누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임 전 차장의 공범으로 명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 의혹 부인했지만 증거·증언 속속 나와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해 6월 1일 경기도 성남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법원의 재판이나 하급심의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대법원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며 “혹시 그런 의구심을 품으셨다면 거둬 달라”고 강조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재임 시 상고법원을 추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며 “저는 그런 것을 가지고 법관에게 어떤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는 달랐다. 검찰은 최근 일제 강제동원 재판 지연 과정에 양 전 대법원장이 개입하려 한 정황과 진술을 확보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동원 소송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반발할 것”이라며 판결을 뒤집으라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또한 강제동원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동원소송의 피고 측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또한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등을 확보했다. 해당 문건은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법관 인사를 앞두고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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