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5시간 30분 단식’ 자유한국당의 유머감각

[친절한 쿡기자] ‘5시간 30분 단식’ 자유한국당의 유머감각

‘5시간 30분 단식’ 자유한국당의 유머감각

기사승인 2019-01-29 07:00:00

“내 아내에게 허락은 받았습니까” 

지난 1981년 총격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상처 부위를 살피던 간호사들에게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는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의료진에게 “당신들이 모두 (레이건 대통령이 소속돼 있던)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대통령 암살 시도라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여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는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줬죠. 정치인의 농담은 딱딱한 분위기를 풀고 때로는 국면을 바꿉니다.

그러나 정치인의 유머가 늘 효과를 보지는 못하나 봅니다. 최근 자유한국당(한국당)의 유머는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지난 24일부터 정부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임명 강행에 반발해 ‘릴레이 단식 농성’을 진행했습니다. 28일 기준, 벌써 5일째를 맞았습니다. 의원들은 일자별 오전, 오후로 조를 나눠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30분, 오후 2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한 조당 5시간30분씩입니다. 

단식 투쟁은 간절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곡기를 끊는 시위를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중 한 명인 김영오씨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무려 46일이나 단식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박관현씨는 5·18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을 진행하다 숨을 거뒀습니다. 

A가 아닌 것을 A라고 우기는 것은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과거 탈춤 속 ‘말뚝이’의 양반 놀리기 부터 최근 개그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다만 한국당의 이번 우기기는 미소 아닌 실소를 불러 문제가 됐습니다. 

비난이 커지자 한국당은 ‘단식’이라는 표현을 삭제, ‘릴레이 농성’이라고 정정했습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원래는 한 분이 종일 단식하는 형식을 하려다 의원들이 가장 바쁠 때라서 2개조로 나눠 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한국당의 갑작스러운 ‘침묵’도 때로 국민의 허탈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정부와 여당의 문제가 발견됐을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다 한국당 내에서 같은 문제가 제기되면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댓글조작 사건’과 공공기관 채용 비리, 피감기관 외유성 출장 의혹 등이 대표적입니다. 

퍼포먼스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이콧’·‘장외투쟁’ 등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도 힘듭니다. 국민은 정책적인 측면의 보완을 더 요구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각종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정을 요구하는 글들이 다수입니다. 

1월 내 합의 처리를 약속한 선거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입니다. 이른바 ‘유치원 3법’과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관련 법안, 미세먼지 대책,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 위협 비행 등 점검해야 할 현안도 산더미입니다.

제1야당이 제 역할을 못 하면 국회 전체가 삐걱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당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무게를 다시금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경색된 국면을 풀 방법은 한국당식의 유머가 아닌 의정 참여입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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