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만 돌리면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만화 ‘도라에몽’에 등장하는 ‘어디로든 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진구와 도라에몽은 어디로든 문을 통해 어느 곳이든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 집, 공원뿐만 아니라 우주의 끝까지도 가능했습니다.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자유는 특별한 권리입니다. 과거 유럽의 농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농노 대부분은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발 묶인 채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은 지난 1989년의 일입니다. 89년 이전에는 일부 특권을 지닌 이들만 해외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일반 시민들은 북한 땅을 자유롭게 밟지 못합니다. 민간인 출입금지구역, 관계자 외 출입금지구역, 통제구역 등 안전과 안보 등을 이유로 출입하지 못하는 곳도 다수입니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에게는 이러한 제약이 통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디로든 문이라도 갖고 있는 걸까요. K리그 프로축구팀 경남FC는 2일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제재금 2000만원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지난달 3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한국당) 대표와 강기윤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 한국당 후보의 경기장 내 선거 유세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경기장 내 선거 유세는 프로축구연맹 규정 위반입니다.
경남 FC는 “황 대표의 입장권을 검표하는 과정에서 경호업체 측에 정당명과 기호명, 후보자명이 표기된 상의는 입장불가로 공지했다”면서 “일부 유세원들이 ‘입장권 없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검표원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들어가며 상의를 벗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이어 “강 후보 측에도 ‘경기장 내에서 유세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면서 “(강 후보 측은) 직원에게 ‘그런 규정이 어디 있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하면서 계속적으로 선거활동을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후보 측에서 “의욕이 앞섰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경남 FC는 징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던 당시에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지난 2016년 3월 서울역 KTX 플랫폼까지 의전차량을 몰고 들어와 질타를 받았죠. 같은해 11월에는 경찰이 충북 청주 KTX 오송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대기 중이던 버스를 이동시키고 황 대표의 관용차량을 주차해 논란이 됐습니다.
황 대표가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그동안 왜 좀 더 낮은 곳을 찾지 않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선거철이 아닌 평소의 전통시장, 권력형 성폭력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 일본 강제동원 피해 배상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모임, 기계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 13년간 복직을 위해 투쟁해온 노동자들의 농성장, 71년째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제주 4·3사건의 현장,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천안함 그리고 세월호 피해자들. 그가 찾아야 했던 현장과 만나야 했던 이들이 아닐까요.
국민들은 황 대표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능력을 ‘축구장 입장’에 쓰길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