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일본 공영방송 NHK 앞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을 보도하지 않는 NHK 질타 등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을 알지 못 해도 반(反) 아베 시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의 다수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습니다.
지난 1972년 일본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고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시민단체 회원들은 적지 않게 나이를 먹었습니다. ‘젊은 피’ 수혈은 더뎠습니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시민단체 운영진들은 대부분 환갑을 훌쩍 넘겼습니다. ‘우키시마호 순난(殉難·재난을 당함)자를 추도하는 모임’의 의장 요에 카츠히코씨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후임자를 찾지 못해 일인 다역으로 모임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등 우익 집회에서는 20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넷우익 중에는 10대와 20대가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14년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부정한 우익 인사가 20대 24%의 지지를 얻기도 했죠. 해당 인사의 전체 득표율은 12%에 불과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 정부의 역사교육이 잘못됐다는 증거”라고 꼬집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관은 지난 9일 신권 도안의 주인공 선정에서도 드러났습니다. 1만엔(약 10만원)권에 그려질 새 인물로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년)가 선정됐습니다. 그는 구한말 철도와 전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반도 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경인철도합자회사와 농업척식회사 등을 설립해 우리나라 곳곳의 자원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화폐는 한 나라의 특색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한반도 수탈에 앞장 선 인물을 위인으로 기리는 것은 한·일 외교 관계를 더욱 경색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정부는 과거 미야자와 담화와 고노 담화, 간 나오토 담화 등을 통해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간접적으로 표명해왔습니다. 그러나 아베 정부 이후에는 간접적인 사과조차 없었습니다. 외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크게 반발했죠. 정치권에서는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은 위조지폐 방지를 위해 20년 주기로 지폐 도안을 교체합니다. 고령화로 인해 사라지는 정부 비판 목소리, 잘못된 역사교육, 우경화하는 아베 정부 등이 모여 향후 20년 뒤에는 우익 인사가 지폐의 주인공으로 선정될지도 모릅니다. 슬프게도 아베 총리의 외증조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1만엔권에 등장할 수 있다는 가정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