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 아파트가 있었다고요? 전혀 몰랐어요” 친구와 함께 서울 마포구 와우공원을 찾은 대학생 권모(20·여)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1970년 마포구 와우아파트 1개동이 붕괴돼 34명이 사망했다. 불도저식 개발과 부실공사 탓이었다. 그러나 참사에 대한 기억은 흐려졌다. 아파트가 있던 자리는 지난 2001년 공원으로 조성됐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처럼 대한민국에서 참사의 현장은 대부분 지워지거나 잊혔다. 열악한 접근성과 정보 부족으로 인해 추모의 기회마저 갖기 어렵다.
지난 23일 와우아파트 터인 와우공원을 찾았다. 시민들은 공원에서 산책하거나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과거 와우아파트가 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원 입구에 위치한 가로·세로 약 30㎝ 크기의 동판만이 와우아파트 터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동판은 참사 47년 후인 지난 2016년에서야 서울시의 주도로 새겨졌다. ‘부실과 날림공사로 지은 아파트가 무너져 34명이 죽고 40명이 다친 대표적인 재난 참사 현장’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마저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다. 공원을 찾은 젊은이들은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위령탑 등 추모 시설이 세워졌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 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 남측 공원에는 대한항공기(KAL) 폭파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우면산 산사태 관련 위령탑과 추모비가 자리해 있다. 상춘객들로 붐볐던 북측 공원과 달리 남측 공원은 한산했다. ‘대한항공기 버마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KAL 위령탑)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 분향 시설물에 빨간색 칠이 흉하게 남아있었다. 3개의 위령탑·추모비 중 ‘삼풍참사 위령탑’(삼풍 위령탑)에서만 최근 분향한 흔적이 발견됐다. KAL 위령탑 앞에서 만난 김모(72)씨는 “이곳은 양재시민의 숲에서 제일 외진 곳”이라며 “사람이 없어 늘 한적하다”고 말했다.
다수의 시민들은 위령탑과 추모비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인근 주민 박모(58)씨는 “종종 공원을 찾지만 위령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우면산 산사태 추모비의 위치에 대해 묻자 “매일 오지만 그런 추모비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여기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남성도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커녕 접근이 불가능한 추모 시설도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에 위치한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성수대교 위령비)다. 성수대교 위령비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강변북로 사이의 섬과 같은 주차장에 위치해 있다. 대중교통과 도보로는 접근할 수 없다. 성수대교 위령비 설립 당시인 지난 97년에는 도보로 접근이 가능했으나 지난 2005년 강변북로 진·출입을 위한 램프가 설치되면서 길이 끊겼다.
현재 도보로 성수대교 위령비를 방문하려면 차량이 달리는 강변북로를 300m가량 걸어야 한다. 도시고속도로인 강변북로에서 차량은 시속 80㎞까지 달릴 수 있다. 사고 위험이 상당하다.
추모 시설이 일상 속에 세워질 수는 없을까. 오는 2020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시설인 ‘4·16 생명안전공원(가칭)’이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 내에 설립될 예정이다. 전문가와 세월호 유가족은 지난 24일 4·16 생명안전공원의 역할을 두고 토론을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추모 시설은 도심 한복판에서 일상적으로 기억을 허용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치 희생자 추모를 위해 가로·세로 10㎝ 동판을 인도 위에 건립한 ‘걸림돌 프로젝트’,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그라운드 제로’ 등이 선례로 제시됐다.
김소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화랑유원지로 부지가 확정되며 접근성은 갖춰졌다”며 “추모 시설을 어떻게 만들지 논의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접근성이 아무리 좋더라도 ‘콘텐츠’가 없으면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없다”며 “화랑유원지 주변과도 추모시설이 어울릴 수 있도록 고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